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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2 - 더 정확하고 정밀하게, 1초를 향한 과학자의 집념, 정낙삼 박사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2025-04-22 00:00
  • 분류With KRISSian
  • 조회수141


더 정확하고 정밀하게,
1초를 향한 과학자의 집념


정낙삼 박사





시간은 인간의 기본적인 활동뿐 아니라 정보통신·항공 우주·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 각종 산업의 필수적인 요소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경우, 1초만 틀려도 수백 미터의 오차가 생길 수 있다. 세계가 정밀한 시간 측정에 경쟁을 벌이는 이유다. 우리나라의 실정은 어떨까? 현재 대한민국의 시간표준은 탑 수준이지만 독자적인 표준시가 없어 일본의 표준시간을 전파로 받아 사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부족한 자원과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행을 결심한 과학자들 덕분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는데 정낙삼 박사도 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유치과학자 품은 KRISS, 국가표준의 첫발 내딛다


1970년대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이 곧 국력이자 미래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대덕연구단지 기반 공사와 연구소 설립 등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산업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선진 과학기술 개발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이다. 기술자립의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유치과학자제도를 통해 해외 인재들을 영입하는 등 과학기술 발전의 초석 다지기가 진행됐다. 정낙삼 박사는 미국 퍼듀대학교 실험물리학 박사를 마치고 포닥 중 유치과학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1976년 7월, 한국표준연구소(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입소와 동시에 미국 국립표준국(NBS)의 기술조정관으로 발령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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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해군관측소 이동원자시계팀에 의한 세계협정시 최초 전달 모습



그는 미국에서 유치한 과학자들을 만나 필요한

장비와 교육을 제공하는 등 귀국 후 빠른 정착과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환경 구축을 위해 노력했다.




“정원 부소장이 저를 초청했는데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합류를 결정하게 됐습니다. 바로 귀국하지 않고 2년 정도 NBS에서 일했는데요. 주로 미국 전문가들과 협의해서 연구소 초창기에 필요한 장비들을 선정, 연구실 환경을 구축하는 일과 미국 내 흩어져 있는 한국 인재를 유치하는 임무를 담당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유치한 과학자들을 만나 필요한 장비와 교육을 제공하는 등 귀국 후 빠른 정착과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환경 구축을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국내로 돌아와 큰 시행착오 없이 분야별로 표준 확립하는 데 있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우리의 힘으로 이룬 독자적인 표준시 확립까지


“잠시 후 12시를 알려드립니다. 띠띠띠…띠”
1978년 전까지 표준시가 없었던 우리나라는 일본 방송국에서 시보를 받아 사용했다. 전파수신상태에 따라 1000분의 4초 정도 오차가 발생했지만 독립적인 표준시가 없는 나라의 서러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정 박사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표준시간 확립을 강력하게 추진한 사람이 KRISS 초대 소장인 김재관 박사였다고 소개했다.


“독일에서 유학 중이던 김재관 박사와 박정희 대통령의 운명적 만남은 유명하죠. 김 박사가 한국 경제발전의 기반이 된 철강산업 육성방안을 건의했고, 이후 대한민국 유치과학자 1호로 대한민국 국가표준의 기반을 마련한 분입니다. 저는 그 분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걸 아무것도 누릴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 박사가 한국표준연구소장으로 오면서 한 나라가 독립적인 시간이 없는 상황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대한민국 표준시 연구를 강조했어요. 그분의 앞을 내다보는 혜안 덕분에 세슘원자시계를 도입하고 KBS 시보 표준화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결과 일본의 시간에 의지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독자적인 표준시로 방송시보를 할 수 있게 됐죠.”





KRISS는 1978년 2대의 세슘원자시계를 도입한 후 미국해군관측소(USNO)의 이동용 원자시계에 의한 국제시각비교와 동기화를 진행하면서 시간주파수 분야의 측정표준을 확립했다. 1980년대부터는 장거리 항해·비행 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Loran-C 수신기를 매개로 관련 데이터를 국제시보국(BIH)에 보고하면서 국제원자시 생성에 기여하는 등 한국 과학기술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시간은 국민의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표준시부터 각종 산업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요소로 시간표준이 부정확하다면 각 분야의 측정도 정확하게 할 수 없다. 그래서 표준시간 확립은 대한민국 산업화 기반을 마련한 역사적인 일이었다. 표준시보제 실시로 시간 독립국이 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정 박사는 KBS 시보의 표준화를 위한 기술지원뿐 아니라 전국 시각의 일원화 연구, 소형 송수신기 전단부 설계 연구, 정밀·정확도가 높은 첨단 인공위성(GPS)을 이용한 시각비교 기술연구로 국제적 신뢰도가 높은 시간·주파수 표준을 유지·보급하는 데 기여하는 등 퇴임할 때까지 다양한 표준시 보급방법을 개발하며 국가와 사회 발전을 위해 매진했다.

“인공위성을 이용한 국제시각비교를 위해 일본 통신총합연구소와 공동연구를 수행한 결과, 약 1억분의 1초 이내의 정확도를 유지했어요. 실험실형 세슘원자 시계개발 과제를 통해 우리 기술로 원자시계 개발연구도 진행했죠. 시간은 모든 표준의 가장 기본이 됩니다. 정확한 시간 표준을 확보함으로써 우리의 일상이 더 편리해지고 첨단 산업사회의 발전도 가속화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후 후배들이 잘해준 덕분에 KRISS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으며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최상위수준의 KRISS! 너무 잘하고 있어요




그는 과거 KRISS의 40년사 발간을 총괄하기도 했다. 국민연구소로서 KRISS가 40년간 맺은 결실을 기록하며 세계 속에서 빛난 성과들을 알리는 홍보대사의 역할도 톡톡히 해낸 것이다. 첫 직장이자 평생을 연구밖에 모르고 살아온 연구원에게 뜻깊은 기록의 시간이었다. 퇴임 후에는 대학에서 전자기학 강의, 한국전자파학회 창립 및 제3대 회장 역임 등 우리나라 전자파 관련 학문과 정책 분야에서 활동하며 보람된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1980년대에는 국내 연구 여건이 매우 척박했는데, 전자파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전자파의 중요성과 비전을 갖고 학회 창립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죠. 지금은 만 명이 넘는 회원을 가진 모임으로 성장했고 저도 명예회장으로 후배들의 활약상을 듣고 있습니다.”
창립 50주년을 맞은 KRISS 후배들에게 남길 말을 묻자 망설임 없이 너무 잘하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제가 더 얘기할 것도 없이 후배들이 똑똑하고 잘 알아서 하더라고요. 특히 시간표준은 5개국에 꼽히는 수준에 와 있고, 지금 진행하는 새로운 방식의 표준도 잘하고 있어서 자랑스럽습니다.”


정낙삼 박사는 KRISS가 국가표준 체계를 확립하고 산업계 경쟁력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 성과를 떠올렸다.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세계표준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며 확신에 찬 눈빛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의 바람처럼 KRISS는 50년 신뢰를 바탕으로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더 정확하고 정밀한 세상의 기준을 만드는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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