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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과 함께한 사람들 - 나 자신과도 같은 KRISS, 정광화 9대 원장 -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2024-05-01 10:05
  • 분류With KRISSian
  • 조회수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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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SS의 첫 여성 원장인 정광화 원장.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최초의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따랐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78년 KRISS에 자리 잡았을 때 그는 최초의 해외 유치 과학자였다. 남성 위주의 문화가 고착되어 있었던 당시, 과학기술계의 상황 역시 다른 분야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 속에서 정 원장은 편견과 싸우며 연구를 이어갔고 질량표준연구실장, 압력진공연구실장, 진공연구실장 등을 맡아 리더 역할을 수행했다. 1993년에는 대덕연구단지의 다른 여성 과학자들과 함께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를 창립, 3대 및 4대 회장을 역임하며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 재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렇듯 안팎에서 과학기술계의 발전적인 변화를 이끈 그는 2005년 KRISS 9대 원장에 취임한다. 이 또한 출연연과 KRISS 역사에서 최초의 여성 원장이라는 기록으로 남았다.


젊음과 열정을 다한 KRISS

오랜만에 만난 정광화 원장은 밝고 온화한 얼굴로 사보 취재팀과 인사를 나눴다. 따뜻한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를 앞에 놓고 후배들과 마주 앉아 나누는 담소는 자연스레 KRISS에서의 추억으로 흘러갔다.   

“제가 들어왔을 땐, 건물이라곤 행정동 하나가 전부였어요. 비라도 오는 날엔 장화를 신고 다녀야 할 정도로 주변 정비가 잘 되어 있지 않았죠. 불편한 것도 있었지만 참 좋았어요. 직원들이 다 한곳에 모여 있다 보니 정말 가족적이었거든요. 들국화라든지 야생화들이 피어 있는 풍경도 아름다웠고 점심시간이면 인근 농가에서 보리밥을 먹었던 기억도 나요.” 

정광화 원장의 음성은,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그 시절 KRISS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부족한 게 많았지만, 우리나라 기초과학을 세워가는 자부심으로 가슴 뜨겁게 일했던 시절이다.


물론, 여성이라는 이유로 벽에 부딪히는 일도 많았다. 부서장의 자리도 여성은 지도력이 없다며 임명에서 배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같은 조건에서 남성 연구자에 비해 경력을 쌓기 힘든 환경이었지만, 그는 불리한 조건을 딛고 KRISS의 제9대 원장에 올랐다.

“연구 성과물의 가치를 사장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연구자들에겐, 나라의 돈으로 개발한 것이니 필요한 곳에 대가 없이 줘야 한다는 선의가 가득했거든요. 물론 뜻은 좋지만, 사람은 얻은 것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치르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그 가치만큼 활용하지 못하기 마련이에요. 기업이 출연연의 기술을 제대로 대가를 치르고 이전받아 그 가치를 더 키울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광화 원장은 재임 당시 KRISS의 기술이전 실적을 획기적으로 끌어 올렸다. 기술 보안을 강화하는 데도 힘썼다. 이 또한 연구 성과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외부 기관 파견 등을 통해 연구원들에게 시야를 넓히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힘쓰기도 했다. ‘우리 기술’ 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 기술의 가치를 어떻게 확산시킬 수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KRISS 밖에 나가 그런 넓은 안목을 기를 수 있는 경험을 하도록 했다.   

출연연 역사상 첫 여성 기관장이기에 주변의 걱정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사방에서 예의주시하는 상황에서 작은 실수나 단점도 크게 확대될 수 있고, 여성 기관장에 대한 편견으로 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할 때마다 만류의 목소리가 일었지만 그는 소신을 지켜나갔고 결과를 통해 모든 우려를 불식시켰다. 여성 출연연 기관장에 대한 신뢰의 토대를 닦은 것은 정광화 원장이 새긴 가장 큰 족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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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인생  

정광화 원장은 퇴임 후 충남대학교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원장,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이는 모두 KRISS에서 뿌린 씨앗이 틔운 싹이었다.  

“당시 송용호 총장이 취임하면서 충남대에 3개의 전문대학원을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이에요. 출연연과의 협업모델이자 지역의 인프라를 활용한 충남대의 발전 방안으로 만들어진 대학원이죠.” 

분석과 표준은 공통분모가 넓다. 정광화 원장의 KRISS에서의 경험과 경력은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원장직을 맡게 된 데 있어 결정적인 바탕이었다. 그는 초대 원장으로서 교수진을 구성하고 장비를 구축하는 등 분석과학기술대학원의 기틀을 세웠다. 

“분석과학기술대학원은 충남대와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 공동으로 설립한 대학원이다 보니, 동일한 기관이라고 해도 될 만큼 밀접하게 운영되고 있거든요. 기초과학지원연구원 원장 공모 당시 저에게 지원해보면 어떻겠냐는 교수님들의 제안이 있었고, 분석과학기술대학원에서 일하면서 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 대한 지식이 많았기에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는 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으로 재임하며 부서 개편을 통해 연구부서 및 지역센터의 융합연구를 활성화하고 첨단 연구시설·장비를 활용한 분석지원 서비스 업무를 표준화하는 데 힘썼다. 종합해보면 정광화 원장이 추진한 역점 과제는 조직 간 융합연구, 출연연 및 산학연 간 융합연구였다.    

융합을 활용하면 해결책이 없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지금의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에 놓인 한계도 융합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정광화 원장의 견해이다.  

“지금의 변화 속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요. 한 우물만 열심히 파서는 세상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는 시대죠. KRISS를 비롯한 출연연의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정광화 원장은 출연연이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새로운 분야를 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조직 간, 기관 간 융합연구가 보다 원활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통제를 완화하는 제도적 기반이 먼저 마련돼야 할 것이다.


때로는 장가보낸 아들처럼

KRISS에 그립고 애틋한 감정이 든다는 정광화 원장. 

지금은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마음의 거리는 예전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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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주년을 맞는 KRISS에 전하는 메시지 

“KRISS를 보면 꼭 대전 같아요. 전국 곳곳에 홍수가 나도 대전은 별일 없고 폭설이 내려도 대전은 피해 가더라고요. KRISS가 이렇게 안정적으로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구성원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초과학은 상대적으로 논문 성과가 적을 수밖에 없다. 실적이 곧 연구환경으로 이어지기에 기관장으로서 아쉬움은 있지만 그동안 기본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 차근차근 연구실적을 쌓아온 KRISS를 지켜보며 뿌듯함이 큰 정광화 원장이다.     

“글쎄요... KRISS는 저 자신과 구분하기 힘들만큼 특별한 존재에요. 제 인생을 다 보낸 곳이니까요.” 

KRISS에 대한 정광화 원장의 애정은 남다르다. 때로는 장가보낸 아들처럼 KRISS에 그립고 애틋한 감정이 든다는 정광화 원장. 지금은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마음의 거리는 예전과 다르지 않다. 

“요즘 과학기술계에 거센 파도가 치고 있는데요 파도가 세게 칠 때는 파도에 맞서거나 돌파하는 게 아니라 파도를 잘 타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파도를 잘 읽는 방법이나 서핑 기술을 익혀야 하고 장비에 대해서도 배워야겠죠. 다양한 부분을 종합적으로 탄탄히 준비한다면 KRISS는 앞으로도 안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내년이면 50주년을 맞는 KRISS에 축하와 응원을 보내는 정광화 원장. 그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진심이 KRISS인들에게 큰 힘이 되어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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