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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서 만난 시인과 과학자, 인생과 문학을 이야기하다

  • 작성자최고관리자
  • 작성일2014-06-23 11:43
  • 분류지식을 나누다
  • 조회수3378

강화도에서 만난 시인과 과학자
인생과 문학을 이야기하다
시인 함민복과의 대화 

 
노란벽앞에서 찍은 함만복 시인과 KRISS 삶의질측정표준본부 바이오임상센터장 김숙경 책임연구원의 사진          
 

      

강화도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이른 오전 대전을 출발했는데 강화대교를 건너며 시계를 보니 점심때가 한참 지나있었다. 긴 여정의 종착지에는 강화도에 살아 ‘강화도 시인’이라 불리는 함민복 씨와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연히 놀러 왔던 마니산이 너무 좋아”강화도에 정착했다는 시인. 경쟁과 욕망이 가득한 도시를 떠나 섬사람으로 살아가는 시인. 함민복 씨와 나눈 이야기는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처럼 지그시 마음에 전해졌다.

김숙경 참 먼 길을 와서 시인님을 만났네요. 대학생일 때 친구와 와보고 강화도에 오랜만에 왔는데 다리로 이어져있긴 하지만 섬의 분위기가 느껴져요. 17년 전 강화도로 이주하셨다고 들었는데 연고가 있었나요?

함민복 1996년에 왔으니까 벌써 그렇게 됐죠. 사실 현실적인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었어요. 일산에 살다가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문산으로 이사를 했고, 그곳도 땅값이 올라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형편이었어요. 한 동안 친구 집 신세를 지다가 막막한 마음에 마니산에 올라갔어요. 마니산에서 바라본 뻘밭 풍경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그래서 창작지원금으로 받은 500만원을 들고 무작정 강화도에 왔죠.

김숙경 참 시인다운 결정이네요.

함민복 그런가요? (웃음) 뭐, 이런 생각도 했어요. 월성원자력발전소 다닐 때 동해 쪽에서 지냈지만, 서해에선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새로운 바다에서 살아보자’고요.

김숙경 강화도에 와서 쓴 시들을 보면 바다나 섬이 소재인 작품이 많은 것 같아요. 강화도에 정착한 이후의 작품에는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을 것 같아요.

함민복 시는 만남-자연과의 만남, 사람과의 만남, 사물과의 만남을 통해 쓰는 거니까, 뭐가 달라져도 달라졌겠죠. 그리움을 배 그림자로 묘사한 시가 있는데 만약 도시에 살았다면 같은 외로움이라도 다른 것에 빗대서 표현했겠죠. 강화도에 온 뒤 10년 만에 시집을 냈는데, 그게 이곳 강화도 이야기를 엮은 <말랑말랑한 힘>이예요. 10년 동안 강화도에 살면서 이곳 사람들과 어울리고 바다와 갯벌을 보면서 강화도의 삶과 자연이 지닌 생명력을 시에 담았어요.

김숙경 월성원자력발전소에 근무했었다고 하셨는데, 원래 꿈은 시인이 아니었나요?

함민복 그건 아니에요. 초등학교 땐 쌍절곤 돌리기도 좋아하고 운동선수나 액션배우를 꿈꿨던 적도 있지만, 좀 철이 들고 고등학교 때부터 문학가가 되고 싶은 꿈을 키웠어요. 제가 다닌 학교는 수도전기 공업고등학교라고 학비 무료에 전교생이 취업이 되는 학교였어요. 글을 쓰고 싶었지만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진학과 진로를 결정했던거죠. 그런데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수학이나 물리는 재밌어했지만 기계 분해하고 정밀하게 몇 밀리미터까지 따지고 하는 건 안 맞더라고요. 전 두루뭉술한 게 맞아요.(웃음) 그런데 4년 쯤 지났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매달 집에 돈을 부쳐도 가정형편은 나아지지 않고나 자신 역시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느낀 거죠. 그래서 회사를 그만 두고 학창시절 꿈을 찾아 서울예전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간 겁니다.

김숙경 4년이나 다른 길을 가다가 다시 꿈을 찾겠다고,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의지가 대단하네요. 그런데제가 책 읽는 걸 좋아하지만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과학자와 작가의 관점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함민복 흔히 논리적이냐 비논리적이냐를 가지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맞기도 해요. 논리적인 시는 재미없으니까요. 하지만 시 안에 들어가면 논리성이 있어야 해요. 과학적 사고는 시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죠. 손택수 시인의 ‘물새 발자국 따라가다’에 보면 모래 밭 위에 찍힌 화살표 모양의 새 발자국을 보고 앞으로 걸어가며 남긴 발자국인데 끝없이 뒤를 향하고 있다고 표현했어요. 대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것 자체가 과학적 사고잖아요. 기존의 방법이 아닌 새로운 방법으로 대상을 설명하고, 달리 해석하고, 기존의 방법을 바꾸 는 것. 과학적인 사고가 전제가 됐을 때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전 인간의 사고가 분석적인 것을 총괄한다고 생각해요. 

     

  카페 테이블에 앉아 인터뷰중인 함만복 시인과 KRISS 삶의질측정표준본부 바이오임상센터장 김숙경 책임연구원의 사진  

?  

김숙경 제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과학은 분석과 증명을 통해 대상을 명확하게 만드는 과정이고, 시는 사유를 통해 대상에 의미를 더하는 작업이 아닐까 하고요.

함민복 물론 대상을 이미지화 시켜서 그것의 본상을 흐리게 만드는 시도 있어요. 이미지를 없애려는 작업도 이루어지고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시는 수많은 대상들의 교집합을 담아내는 거예요. 각 존재들은 외로움을 안고 있고 그 극복방법으로 위로받고 공감하기 위해 끝없이 교집합을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은유, 비유, 상징 같은 표현이라는 것 자체가 A와 B의 공통점을 찾아가는 과정이잖아요. 이렇게 계속 찾아가다보면 시와 종교영역이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A와 B의 공통점이 C와 공통점을 낳고 그렇게 거듭되면서 온세상을 연결할 수 있는 교집합을 찾아내면 그게 인간이 추구하는 절대 진리가 아닐까 생각해요.

김숙경 문학이란 정말 심오하고 과학과는 또 다른 논리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연구할 때 고통이 있거든요. 관심 연구분야에 경쟁자는 많고, 그래서 남보다 먼저 해야 하고, 창의적으로 해야 하죠. 시를 쓸 때도 그런 고뇌가 따를 것 같은데요.

함민복 그렇죠. 시상이 떠오르면 이미 같은 주제를 다룬 작품이 없는지 먼저 확인을 해요. 요즘이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되니까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한번은 물고기가 튀어오르는 걸 보고 ‘대못같이 튀어 올랐다’는 구절을 썼는데, 혹시 내가 전에 어딘가에서 읽은 구절은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구절을 쓸만 한 사람이 누굴까 떠올려서 시집을 다 찾아봤죠.

김숙경 저희도 그래요. 어떤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논문 검색부터 하거든요. 최근에는 글도 쓰시지만 강연도 많이 하시더라고요. 글로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과학강의를 해봤지만 아는 것이 많고 연구를 잘한다고 강연을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함민복 강연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는 재미도 있어요. 그리고 특별한 만남들도 있어요. 가정폭력 피해자나 성폭력 피해자 모임에서 초청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런 경우엔 아무리 멀더라도 가요. 의외로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게 쉽지 않아요. 하지만 ‘시는 어려운 게 아 니다’, ‘말하는 건 모두 시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해요. 이렇게 시에 다가설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함만복 시인의 꽃봇대 시가 적혀 있는 그림 엽서 사진     

김숙경 마지막으로 앞으로 작품 활동에 대한 계획이 궁금해요.

함민복 올해 안으로 동화, 동시집, 산문집, 이렇게 세 권을 낼 생각이에요. 동시집은 거의 완성됐고 최근 동화 작업을 시작했어요. 전에 한창 배타고 나가 물고기 잡으러 다니던 때가 있었거든요. 한번은 친구들이랑 여수에서 작은 배 한척을 샀는데 안에 들어가 보니 큰 숭 어 한 마리가 있더라고요. 놓아주려고 보니까 이 숭어에 따개비가 붙어있는 거예요. 먼 바다에서 잡혀온 숭어와 따개비가 낯선 섬에 와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있죠. 아, 내용에 분단에 대한 이야기도 담을 거예요. 강화도가 전방이니까요.

김숙경 동화 역시 강화도가 빠지지 않네요.(웃음) 동화도, 동시집도, 산문집도 기대하겠습니다.


※ 김숙경 : KRISS 삶의질측정표준본부 바이오임상센터장(책임연구원)
    함민복 : 시인. 1988년 세계의 문학 '성선설' 등단 후 2011년 제비꽃 서민시인상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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