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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

  • 작성자최고관리자
  • 작성일2014-04-28 17:13
  • 분류지식을 나누다
  • 조회수3366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

  검은색 사람 두상의 위쪽에 하얀색으로 뇌가 그려져 있고, 그 뇌는 녹색바탕에 검은색으로 sad라고 쓰여 있는 부분, 검은 바탕에 녹색으로 enjoyment라고 쓰여져 있는 부분, 검은 바탕에 녹색으로 pain이라고 쓰여져 있는 부분의 3개의 조각이 그려져 있는 그림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로 유명하다. 그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모른 채 막연히 ‘생각’이란 것이 ‘인간 존재’에 필수조건 쯤 되는 것으로 믿고 살아왔었다. 즉 인간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과 다르고 위대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위대한 것인가? 나 스스로를 돌아볼 때 여러 의문이 든다.

우선, 내 생각 속에는 위대하다는 말을 붙이기에는 너무 잡다한 것이 많다. 이런 정돈되지 않은 생각이 인간 존재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나로서는 인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생각 이전에 ‘느낌’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무시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전에 누군가가 “생각은 무엇으로 하느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생각을 무엇으로 하다니, 생각은 생각이지 그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라고 반문했었다. 그런데 생각은 단어로써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생각은 단어들의 연결로 이루어진다. 즉 생각은 소리 없는 말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생각이 아니고 느낌이다. 뭐라고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우리는 많이 느끼며 살고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 표현은 많다.하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사랑이란 감정이 똑같지 않다. 사랑 외에도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들은 수없이 많다. 그리움, 외로움, 즐거움, 슬픔, 기쁨, 아픔, 애달픔 등등... 이 단어들 하나하나가 일반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있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제각각이다.

이런 느낌은 남자보다도 여자들이 훨씬 더 복잡하게 발달해 있다. 그 이유를 오랜 옛날 원시인 시절에서 그 기원을 찾는 과학자들도 있다. 남자들은 사냥하러 밖에 나가고, 여자들이 주거지에서 아이를 키운다. 그 때 갑자기 다른 종족의 인간이 나타났을 때 여자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다. 여자들은 순간적인 느낌으로 상대방이 적인지 아닌지 판단을 해야 했고, 그런 능력이 유전적으로 현재의 여성들에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럴 듯한 이론이다. 인간은 생각(말)을 하기 훨씬 이전부터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 없이 느낌만 있다고 하여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데카르트의 명제가 참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것이 훨씬 더 진리에 가깝지 않을까?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느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상대방이 말하는 사랑과 같은지 다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말이나 글 아닌 방법으로 느낌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거나 전달할 방법은 없을까?

미래에는 사람의 느낌이나 감정을 보다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올 것이다. 지금도 심장 박동, 혈압, 손바닥의 땀, 눈동자의 움직임, 얼굴 근육의 떨림 등으로 거짓말 하는 것 을 찾아내거나 감정상태를 어느 정도 알아내고 있다. 앞으로 이 분야의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식의 표현도 가능해질 것이다.

“당신이 상대방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A1형이고, 그 세기는 90입니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당신에게 느끼는 것은 C2형입니다. 그래서 서로의 사랑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감정상태에 따라 뇌에서 활성화되는 부위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는 뇌자도 기술은 이런 일이 허구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과학기술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존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과학기술도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인간은 이성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다. 감성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인간은 감성적인 동물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이성이 방향을 결정하는 키와 같은 것이라면 감성은 배를 움직이는 동력과 같다. 이성이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더라도 동력 없이는 배가 움직이질 못한다. 이 둘을 균형적으로 갖추는 것이 좀 더 완성된(위대한)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방향일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오늘날 우리 과학기술계에서는 ‘융합’을 강조하는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이공계와 인문계를 구분하지 말고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과학, 수학 뿐 아니라 인문, 사회, 음악, 미술, 체육 등 모든 과목을 가르치면서 ‘全人敎育’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교육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있는 다양한 학문과 지식을 어린 학생들이 조금씩이라도 맛보게 하는 것은 ‘감성의 시대’, ‘융합의 시대’를 주도할 인재양성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글:이호성(KRISS 책임연구원, KIST 유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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