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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영감을 주는 사진, 세상에 온기를 더하는 과학

  • 작성자최고관리자
  • 작성일2014-03-19 22:59
  • 분류지식을 나누다
  • 조회수2298

과학에 영감을 주는 사진, 세상에 온기를 더하는 과학

“융합이란 뭘까요?” 최근 한 기업의 이미지광고에 나오는 대사다. “합치는 것?” 교수도, 주부도, 학생도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 융합은 시대적인 조류이고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융합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다르고 견해차가 존재한다면 어떤 노력도 의미 없다. 물과 기름을 섞어 놓는 격이 되기 십상이다. 먼저 만나야 하고, 대화가 필요하다. 과학자와 사진작가의 만남, KRISS 박용기 박사와 상명대 양종훈 교수의 대화는 융합을 바라보는 서로의 시각을 이해하고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작지만 큰 첫 걸음이었다.

박용기 KRISS에서 예술 계통에 계신 분을 정책자문위원으로 모신 적 이 없었는데 양 교수님이 최초인 것 같습니다. 상당히 좋은 발상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양종훈 원장님께서 잘못 판단하신 게 아닐까요?(웃음)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제가 시각장애인 사진교육을 하고 있는데, 수업을 진행할 때마다 과학의 도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곤 해요. 마찬가지로 과학을 하면서도 예술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겠죠. 그런 부분이 잘 맞았던 게 아닌가 생각해요.

 

박용기 저도 시각장애인에게 사진을 가르친다는 얘길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카메라가 발전해온 과정을 보면 사람의 인지를 닮아가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데요, 미래에는 시각장애인들이 카메라 없이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할 수 있겠다 생각해요. 이미 기억으로부터 이미지를 추출해 영상화 하는 초보적 연구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는데 앞으로는 시각장애인들이 머릿속에 상상한 이미지를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시대가 올 거라는 생각입니다.

양종훈 그게 바로 시각장애인들이 꿈꾸는 거예요. 가능할 것 같고요. 제가 30년 전에 언젠가 오토포커스 기술이 실현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지금은 정말 가능해졌잖아요. 그런데 과학이 너무 높은 수준까지 발전하면 사진이 그걸 포용할 수 없는 한계점이 있을 거예요. 과학이 발전하면서 셔터 속도가 4000분의 1초를 넘어섰어요. 날아가는 총알도 찍을 수 있는 속도죠. 그래서 8000분의 1초에서 멈췄어요. 가능할지라도 사진에서 그 이상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인지과학을 이용한 카메라 기술도 일정한 수준까지만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예술에는 ‘심장’이라는 게 있거든요. 과학이 그 부분까지 들어오면 그건 이미 예술이 아니니까요.

 

박용기 예술과 과학의 차이가 거기 있습니다. 사실 8,000분의 1초가 카메라 셔터 속도의 최고치지만 과학에선 굉장히 느린 속도예요. 분자들의 거동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1,000조 분의 1초인 펨토초 레이저로 촬영을 합니다. 게다가 이제는 100경분의 1초인 아토초까지 가고 있어요. 이렇게 과학이 계속 발전하더라도 예술분야에 무조건 적용할 수는 없죠. 지금 단계에서는 반대로 과학자들이 예술가들로부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종훈 KRISS도 그런 부분에서 저를 정책자문위원으로 위촉했을텐데 제가 그만큼 도움이 못되는 것 같아요. 다만 한 가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건 KRISS가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대국민홍보는 너무 부족하다는 겁니다. 국민에게 호소하는 데는 관심이 없는 거죠. 영화에 기술감독이 있듯이 이제 과학에도 예술감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한 박용기 박사님의 말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런 역할을 아주 조금이나마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용기 지금 과학계에서는 융합기술이 요구되고 있는데 과학자들의 아이디어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홍보도 마찬가집니다. 예술가는 자연스럽게 대중과 교감해왔고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법을 알고 있어요. 과학자들도 예술가들이 대중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양종훈 맞습니다. 과학에서 1 플러스 1은 2지만 예술에선 정답이 없을 수도 있어요. 과학은 논리적이지만 예술은 비논리적인 영역이거든요. 이렇게 과학과 예술은 세상을 이해하는 개념부터 다른데 무턱대고 ‘융합’을 하자고 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같은 길을 가는 게 아니라 각자의 길을 가면서 가끔 만나는 걸로 충분해요. 서로 도움이 필요할 때 힘을 빌려주면서요.

 

크게 웃고 있는 KRISS 박용기 박사와 상명대 양종훈 교수의 사진

       

박용기 시각장애인에게 사진을 가르치는 부분에서 또 하나 생각이 든 건 예술을 통해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KRISS도 따뜻한 과학기술을 연구소의 방향으로 삼고 과학기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상당히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양종훈 예술이 꼭 아름다워야 하는가, 저는 꼭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시각적으로 아름답지 않더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존재가치가 있다는 거죠. 2000년에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에서 에이즈 환자들을 촬영했었어요. 스와질랜드 인구의 40%가 에이즈를 앓고 있는데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죠. 그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고 2006년 12월 1일 세계에이즈의 날, 시청광장에서 스와질란드 에이즈 환자들의 사진을 전시했어요. 그때부터 에이즈 퇴치 운동단체에서 기금을 모으기 시작해 1억 5천만 원을 마련해 얼마 전 스와질랜드에 에이즈 환자들의 갱생을 돕기 위한 건물들을 지어줬다고 하더군요. 내년 1월에는 스와질랜드 에이즈 환자들이 만든 작품들을 한국에서 판매해 성금을 모아 전달하려고 해요. 과학이 세상을 바꾼 것에 비하면 작은 영향력이지만 그 천만 분의 일이라도 사진으로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싶어요. 사진 그 자체가 아니라 사진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예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용기 그런 면에서 예술이 과학에 새로운 미션을 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과학자들이 사진을 통해 에이즈 환자들의 안타까운 상황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죠. 돈이 되는 기술이 아니라 가치 있는 기술에 더 많은 과학자들이 관심을 갖도록 사진이 영감을 줄 수 있을 거예요. 또 한편으로는 과학자들은 한 가지에 몰입하다보면 가끔 생각에 갇히는 수가 있는데, 그럴 때 예술을 통해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여유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양종훈 그렇죠. 몰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여유도 중요하거든요. 호주 초등학교에 가보면 수학, 과학은 거의 가르치지 않고 그림 그리고, 악기 연주하고, 밖에서 뛰어놀게 해요. 그래도 의학, 과학을 포함해 노벨상 수상자를 15명이나 배출했죠. 지식을 많이 가르치는 것보다 창의력을 길러주는 게 더 중요해요.

 

박용기 네, 여유가 있어야 몰입도 할 수 있고요. 이제 우리나라 과학은 선진국을 따라잡는 것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창의력이 필요하고, 기술자보다 창조적인 인재를 길러야 해요. 정말 엘리트를 기르기 위해서는 예술교육도 함께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과학자들도 예술가들이 작품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고 창조적인 부분을 배우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양종훈 KRISS 과학자들에게 예술교육을 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요? 1년 동안 연습을 해서 연말쯤 무대에 올리는 겁니다. 연구는 표준을 벗어나면 안 되지만 삶은 표준에서 벗어나야 행복하거든요. 그렇게 조금씩 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게 어떤 거창한 융합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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