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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20여 년을 한결같이, 시계초침만큼 쿨한 연구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2023-06-20 00:00
  • 분류With KRISSian
  • 조회수420

20여 년을 한결같이, 

시계초침만큼 쿨한 연구


쿨하다의 정의는 연연하지 않고, 뒤끝 없이 깔끔하게, 감정을 빼고 등등의 뜻을 내포한다. 그렇게 보자면 표준은, 그리고 기초과학 연구는 그 어떤 것보다 쿨한 것일지도 모른다. 표준을 세우는 데 있어, 과학적 이치를 밝혀내기 위해서 트렌드나 인기 등은 고려요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계에서 몇십 년 동안 한 가지 연구만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표준과 관련된 연구 주제를 20여 년 한결같이 유지해온 KRISS 원자기반양자표준팀은 가히 ‘쿨의 왕좌’를 차지할만한 팀이다. 외부 과제도 없이 인기나 인사고과나 연봉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한 길을 파온 원자기반양자표준팀을 만나 그간의 성과와 긴 호흡으로 바라보고 있는 미래 비전에 대해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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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부터) 김휘동 책임연구원, 이원규 책임연구원, 유대혁 책임연구원, 박창용 책임연구원


쿨하게 걸어온 우리만의 길 

시간은 세상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가고 거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간은 누가 언제 어떻게 정하는 것이고 시간 표준을 연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시간 단위인 ‘초’는 반세기 전 1967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정해졌다. 이후 세계는 더 정확한 단위를 만들기 위해 4년 혹은 6년마다 세계 도량형 총회를 열어 전 세계가 사용하는 단위를 재정비하고 있다. 시간 단위인 ‘1초’는 지구가 한 바퀴 자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평균 태양일을 86,400으로 나눈 값이다. 그러나 불규칙한 자전으로 원자 단위로 1초의 정의를 재정립하는 작업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1967년부터는 세슘원자에서 나오는 특정 빛의 진동수를 기준으로 1초가 재정의되었다. 물론 이 ‘1초’를 재는 것은 시계다. 


모든 시계의 작동 원리는 같다. 일정한 진동 주기를 갖는 어떤 현상을 하나둘 세어서 시간 간격을 재는 장치인 것이다. “괘종시계는 시계추가 한 번 흔들릴 때마다 초침이 한 칸씩 가게 만든 거잖아요? 저희 팀이 연구하고 있는 이터븀 광시계는 레이저 전기장 진동 횟수를 세는 광시계의 일종으로 원자의 최외각 전자가 1초에 518조 번 진동하는 빛에 반응하는 성질을 이용한 것입니다. 현재 세계표준시는 세슘 원자를 이용한 것인데요. 약 2~3억 년에 1초 오차가 나는 정도로 유지되고 있어요. 하지만 이터븀은 훨씬 높은 주파수를 이용하기 때문에 훨씬 더 정확한 시계를 만들 수 있답니다.” 원자기반양자표준팀 박창용 책임연구원의 설명이다.


2021년, 팀은 20억 년에 1초밖에 오차가 생기지 않는 광시계개발에 성공했다. 세계적으로도 대단한 성과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100년도 못사는 인생인데 20억 년 1초 오차 극복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1초의 차이는 생각 이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1초 차이로 새해가 바뀌고, 1초 차이로 내비게이션이 길을 잃고, 은행 거래나 업무가 정지되어 세상이 마비될 수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 영역에서는 그 영향력이 더욱 커진다. GPS 위성이 위치까지 센티미터로 알려주는 세상. 이런 세상이 가능하게 된 것은 수천만 년에 1초 정도 오차를 갖는 원자시계가 인공위성에 실려있고 지상국에는 그보다 열 배 더 좋은 원자시계가 지상국에서 인공위성의 시계를 맞춰주고 있기 때문이다. 광시계는 그런 원자시계보다 백 배는 더 정확하다.


블랙홀 사진을 찍었다거나 중력파를 검출했다거나 하는 최근의 과학적 성과들은 광시계 관련 기술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관측장비에 의한 것이다. 이외에도 광시계 관련 기술은 암흑물질의 탐사, 물리 상수의 검증 등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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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터븀 광시계에 대해 설명하는 이원규 책임연구원


1초의 차이는 생각 이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1초 차이로 새해가 바뀌고,

1초 차이로 내비게이션이 길을 잃고,

은행거래나 업무가 정지되어

세상이 마비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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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터븀 광시계의 레이저시스템


이터븀 광시계 연구의 20년 역사 

광시계 연구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2000년 즈음 핸쉬, 홀,카토리 등 뛰어난 과학자들이 빛을 이용해 시계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면서 세계는 광시계 개발 열풍에 휩싸였다. KRISS에서 광시계 연구를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2001년 길이센터 윤태현 책임연구원이 광주파수 제어 연구단을 만들어 광빗을 제어하는 데 성공했고 이터븀 원자 자기광 포획에도 성공했다. 동시에 시간센터에서도 광시계의 한 종류인 이온시계에 대한 초기 연구를 시작했다. 2005년 시간, 길이센터가 통합되면서 광시계 연구팀을 끌어안았고 이터븀 광격자 시계로 연구 방향이 결정되면서 팀이 구성되었다. 그렇게 구성된 팀이 현재까지 거의 유지되고 있다.


광주파수 제어 연구단시절부터 시작하여 경력이 가장 오래되어 ‘이터븀 광시계의 할아버지’라 불리는(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박창용 책임연구원, 길이센터에서 광시계 연구팀으로 넘어오셨고, 현재는 연구팀장을 맡고 있는 이원규 책임연구원, 전 시간그룹장이셨던 유대혁 책임연구원. 이들이 2005년 새팀 창설시기부터 현재까지 연구과제를 이끌어온 고정 멤버다. 현재는 이들 고정 멤버에 현 그룹장을 맡고 있는 허명선 그룹장, 5년 전 새롭게 수혈된 젊은 피, 김휘동 책임연구원이 팀을 이루고 있다.


2005년부터 한 팀으로 호흡을 맞춰온 그들이 이뤄낸 성과에는 무엇이 있을까? 초기 이터븀 광시계 연구는 녹록지 않았다. 레이저 광원을 얻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2011년 어렵게 광시계 신호를 얻고 나서도 실험실의 진동, 온도, 습도 등의 상황이 열악하여 일정하게 신호를 얻기가 어려웠다. 그 상황에서도 연구원들은 논문을 출간하여 세계에서 세 번째로 이터븀 원자의 시계 전이선 절대 주파수를 측정한 곳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연구의 큰 진전이 이루어지기 시작된 것은 첨단동으로 실험실을 이전하고 광시계 물리부를 개선한 2013년부터다. 2016년에는 광시계가 안정적으로 돌기시작하면서 불확도가 세슘원자시계를 뛰어넘기 시작했다. 이어 계속적인 불확도 개선이 이루어졌고 2021년에는 10-17 수준에 도달, 국제도량형국(BIPM)에 초의 정의 2차 표현 시계로 등록되었다.


이들을 20여 년 동안

흔들림 없이 시계 연구를 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팀원들은 돌이켜보니 물리의 기초가

되는 연구를 한다는 자부심이

아니었을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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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기반양자표준팀에서 개발한 이터븀 광시계 동작상태 확인


시계처럼 꿋꿋하게 가는 길

한 가지 주제를 변함없이 20여 년간 연구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에는 잘 맞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시류에 맞게 관심을 얻기도 어려웠을 텐데, 조심스럽게 꺼낸 질문에 박창용 책임연구원은 이렇게 답한다.

“맞아요. 시계 연구는 엄청나게 뜨거운 주제는 아니죠. 연구자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줄 수 있는 분야도 아니고요. 실제로 인사고과와 연봉에 연연하는 성격이었다면 버티기 어려웠을지도 몰라요. 지금은 잘 나가는 연구팀이 되었지만 10년 정도는 인사고과가 바닥이었거든요. 외부 과제를 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센티브를 듬뿍 받아가는 다른 연구원들을 보면서 흔들리지 않아야 했답니다. 다행히 저희 팀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온 팀원들은 대부분 그런, 쿨한 성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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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기반양자표준팀에서 개발한 이터븀 광시계 kriss-yb1



그렇다면 이들을 20여 년 동안 흔들림 없이 시계 연구를 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팀원들은 돌이켜보니 물리의 기초가 되는 연구를 한다는 자부심이 아니었을까 말한다. 그냥 이런 연구가 즐거웠던 것 같다고, 기초 연구를 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 같다고.

긴 시간 동안 그들이 공들여온 것은 시계의 정확도를 높이는 일이었다. 마치 입자가속기가 점점 에너지를 높여갈수록 새로운 결과가 나오는 것처럼 시계도 정확도를 높이면 새로운 현상을 관측할 수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이 연구는 원자 물리 분야에서 눈에 띄지는 않지만 항상 관심받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더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2030년 즈음, 세슘 원자시계에서 광시계로 표준시가 정해질 가능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연구팀의 다음 목표는 10-18 불확도에 도전하는 것. 여기에 도달하면 세계 기록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목표에 이르는 시기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14년에 10-14, 17년에 10-15, 21년 10-16, 현재는 10-17으로 꾸준히 업그레이드해왔을 뿐이다. 연구원들은 그 다음 목표를 향해 다시 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연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에 대해 묻자 연구원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단위를 정하는 국제기구는 2030년까지 1초를 다시 정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저희 팀이 이루어낸 성과가 세계적으로 기여를 했으면 좋겠고요.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이터븀 광시계 연구팀이 1초의 정의를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드러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요. 앞으로도 오랫동안 함께 연구할 수 있는 30대의 새로운 연구자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들어온 지도 벌써 7, 8년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팀의 막내를 맡고 거든요.” 김휘동 책임연구원이 한마디 거든다. “지금은 시계에 대한 이슈가 많아서 2030년이 지나면 뭐가 바뀔지 알 수 없어요. 그렇지만 현재에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 것 같아요. 시계는 멈추면 안 되는 거니까요.” 시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기초과학 연구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단지 연구가 좋아서, 연구 자체에 재미를 느껴서, 긴 호흡으로 묵묵히 한 가지 주제를 탐구해가는 연구원들이 있는 한. 그들의 ‘쿨’한 연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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