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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SS가 만난 사람

  • 작성자최고관리자
  • 작성일2016-06-07 13:24
  • 분류지식을 나누다
  • 조회수1867

세계와 역사를 가늠하는 도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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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봉 부산대학교 사학과 교수

문명이 발달한 시점부터 인류는 길이와 너비, 부피와 무게 등을 측정하는 문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각자 일구는 밭의 길이를 재고 추수한 곡식의 무게를 측정하며 필요한 물의 부피를 가늠하는 일은 과거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현대사회는 길이와 무게 등을 측정하는 첨단 장비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과연 과거에는 어떠한 방식으로 길이와 무게를 측정 했을까. 과거 선조들의 측정 방식에 대한 도량형 연구를 묵직하게 진행해 온 한 사학자가 있다. 이종봉 부산대 사학과 교수. 국내 도량형 연구의 뚝심으로 불리는 그로부터 도량형의 역사와 정확한 측정의 중요성, 더불어 한국을 넘어 세계와 연결된 도량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역사학자로의 길 열어준 ‘뿌리’에 대한 갈망

이종봉 교수는 국내 도량형 연구에 있어 권위 있는 사학자로 꼽힌다. 지난 2005년과 2006년, 우리나라의 고유 도량형기를 디지털로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해 후손들이 선조의 생활 방식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힘을 쏟기도 했다. 오랜 시간 도량형 연구를 이어온 이종봉 교수는 “중학교 때 막연하게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렇게 연구를 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며 “왜 역사학자가 됐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그냥 그러고 싶었다. 꿈을 갖고 그곳을 향해 걷다보니 자연스레 길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어린 시절에는 다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고민하잖아요. 당시 제게 현실은 법대 진학이었고 꿈은 역사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죠. 당시만 해도 법대에 가면 모든 게 잘 풀릴 거라는 생각이 만연했거든요. 헌데 전 그것보다 우리 과거를 알고 싶더라고요. 그 과거를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고요. 그래서 역사 연구의 길을 걸어오게 됐습니다.” 꿈을 좇아, 대학 진학도 결국 사학과를 택했다. 헌데 막상 그 꿈 안에서도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가장 먼저 역사 중에서도 어떤 전공을 택할 것 인지에 대한 고민이 자리 잡았다. “고려시대를 선택했어요. 고려시대 중에서도 무엇을 공부할 지 고민했죠. 당시 80년대에는 사회경제사 연구로 시대 흐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 쪽으로 마음이 살짝 기울기도 했죠. 헌데 제가 농촌 출신이거든요. 사회경제사보다는 농업 관련된 분야를 공부하는 게 더 좋겠다 싶어서 농업 기술 및 생산력 등에 관한 농업사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오지와 산지를 오가던 연구

이종봉 교수가 본격적으로 도량형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박사과정을 밟으면서다. “도량형까지 갈 것도 없이 농업사에 대한 자료가 굉장히 적은 게 현실”이라는 이 교수는 농업사에 대해 논문을 쓰려고 했지만 자료가 부족한 현실에 많은 고민을 했고, 그러던 중 고려시대 농업 생산량이 계량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에 관심을 두면서 자연스럽게 도량형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게 됐다고 한다.

“당시 도량형을 연구한다고 하니까 주위 선배들이 모두 말렸어요. ‘농업사도 자료가 없는데 도량형을 어떻게 연구하려고 하냐’면서, 논문 주제거리도 안되니까 생각도 하지 말라는 거예요. 헌데 제가 괴짜 기질이 있는지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남들이 안하는 분야니까 내가 정리를 해놓는 게 좋겠다 싶더라고요. 결국 박사학위 논문을 도량형에 맞췄죠.” 그렇게 시작한 도량형 연구. 패기와 열정으로 시작했지만 이종봉 교수는 연구를 진행할수록 선배들의 조언이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산지와 오지를 가는 건 물론, 연구를 위해 산을 타다가 미끄러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는 등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기도 전에 몸이 상하고 축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은 강사 시절이었는데, 답사를 위해 친구 몇 명이라도 섭외(?)하면 그들에게 밥을 사주느라 가벼운 주머니가 더 가벼워진 채로 연구실에 돌아오곤 해야 했다.

“쉽지 않았죠. 현재까지 남아 있는 역사 자료가 없어서 그래요. 고려 초기의 경우 자 등이 남아있지 않아 그 비어있는 지점을 어떻게 메워야 할 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결국 연구자들이 건물지를 측정해 각 건물지 간 간격이 얼마나 되는지 표준편차를 내서 자 길이를 유추했어요. 무게 측정도 쉽지 않았죠. 당시 무렵의 자료를 찾고 측량을 하기 위해 전국을 많이 다녀야 했어요. 직접 가서 촬영도 하고 측정도 하고. 헌데 저는 장비가 없잖아요. 홀로 많은 한계를 느끼곤 했죠.” 박사학위 논문을 쓰던 당시 경주 단석산 신선사에 갔던 일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신선사에 가면 30 m 떨어진 곳에 거대한 암벽이 ‘ㄷ’자 모양으로 솟아 있다. 암벽의 삼면에 불상 10구가 새겨져 있는데 당시 이 교수는 불상의 높이를 측정하려다가 온갖 고생을 하고 돌아오곤 했단다. “줄자를 가져가도 잴 수가 없어요. 길이도 엄청나게 길고, 위치도 낭떠러지 비슷한 곳이라 난감했죠. 동네아랫마을에서 대나무를 구해와 측정했어요. 약 6.72 m로 나오더라고요. 이후 대구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정확하게 측정해보니 6.62 m이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힘들게 길이를 재고 다녔던 것 같아요. 혼자 할 수 없으니 친구들 데려가서 모두 고생하고. 하하. 산이며 들이며 많이도 다녔네요.”



측정, 역사와 과학 사이

그렇게 하나하나 자료를 모아 결국 고려시대 도량형 틀을 만들 수 있었다. “친구와 선생님을 많이 괴롭혔다”며 사람 좋게 웃는 그는 “힘들긴 했지만 그 때는 고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즐겁게 일 했던 시절”이라며 미소로 과거를 되새겼다. 물론 고생은 많이 했지만, 정확한 측정은 반드시 필요했다. 이종봉 교수는 도량형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역사에서 도량형이 매우 큰 역할을 하는 만큼 과학적 방법이 동원된다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하게 이야기 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도량형 연구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않았어요. 1990년대 후반 성덕대왕신종 무게 측정도 국가에서 한 게 아니라 국내 한 저울업체가 진행 했습니다. 사실 성덕대왕신종의 경우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말도 많고 오류도 많았어요. 전문 업체에서 측정해주니 다행이었죠. 그렇게 무게를 재지 않으면 저희로서는 알 도리가 없거든요. 성덕대왕신종 완성은 혜공왕 때지만 시작은 경덕왕 때부터입니다. 덕분에 당시에 무게 한 근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 이웃나라인 중국의 경우 저울과 자 등의 측정도구가 남아있어 과거를 고증하는 게 한결 수월하지만,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남아있는 자료가 많지 않아 연구자로서 쉽지 않은 지점이 많다는 이종봉 교수는, 그렇기에 과학적 측정 방법이 도량형 연구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살며시 내보였다.

“저희 사학자는 과거 시대의 사상, 관념 등에 초점을 두지만 과학은 물성 등에 더 초점을 두잖아요. 최근에는 과학 하시는 분들께서 역사에도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만큼 서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며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간극을 좁혀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도 국보급 문화재 중 측정은 생각지도 못한 경우가 많아요. 저 같은 경우 농기계 강도도 조사하고 싶어요. 어떤 식으로든 과학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요.” 이종봉 교수는 앞으로 10년 동안, 한국을 넘어 한·중·일 아시아의 도량형을 더욱 연구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금까지 ‘한국의 도량형’이라는 것에만 너무 매몰됐다면 앞으로는 동아시아의 도량형을 연구해 각 나라가 서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관성과 차이점을 밝히고 싶다는 것이었다. 세상과 역사를 더욱 정확하게 측정할 그의 도량형 연구. 앞으로의 10년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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