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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되살아난 추억, 아련하게 걷는 그 길

  • 작성자최고관리자
  • 작성일2016-05-02 15:11
  • 분류함께 걸어가다
  • 조회수2627

예술로 되살아난 추억, 아련하게 걷는 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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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창동예술촌

 

몇 해 전 마산이라는 도시가 갑자기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중심인물인 나정이네 가족과 쓰레기가 모두 마산 출신이었다. 드라마는 마산에 살던 성동일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오며 시작한다. 미팅 장면에서는 ‘마산 4대 갑부(무학소주, 몽고간장, 시민극장, 코아양과)’아들들이 등장해 큰 웃음을 줬다. 그렇게 1994년에는 마산시가 당당히 존재했다. 그땐 누구도 마산시가 없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2010년 마산은 창원시에 통합되면서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가 됐다. 그렇게 마산시는 사라졌지만 마산이라는 지역이 주는 정취는 그대로다. 신도시에 없는 추억과 낭만이 있다. 

되살아난 거리, 반가운 그 길
창원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창동거리는 80년대까지만 해도 마산은 물론 경남에서 제일 가는 번화가였다. ‘경남의 명동’으로 불리던 시절, ‘마산 4대 갑부’로 불리던 시민극장, 코아양과도 창동거리에 당당히 서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경공업이 쇠퇴하고 인구가 급감하면서, 빈 점포가 늘어나고 거리는 빈민굴처럼 변해버렸다. 이렇게 방치됐던 거리에 다시 활기가 되살아난 건, 2012년 창원시가 ‘도심 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부터였다. 시는 빈 점포들을 매입해 예술인들에게 무료로 제공했고, 쓸쓸했던 골목은 점차 갤러리, 화실, 공방, 아트숍으로 채워졌다. 골목 구석구석엔 아기자기한 설치미술작품들이 놓이고, 썰렁하던 건물 외벽은 파스텔톤 페인트로 화사하게 단장됐다. 공연장, 음악교실, 서점, 심지어 만화방, 오락실, 노래방까지 ‘문화’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창동예술촌은 서로 다른 테마로 꾸민 세 개의 거리로 이루어져 있다. 50~80년대 옛골목 모습을 복원한 ‘마산예술흔적골목’,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 선생을 조명하는 공간으로 꾸며진 ‘문신예술골목’, 그리고 지역 예술인을 위한 창작 공간이자 예술인과 상인, 시민들이 융화하는 예술 상업 공간인 ‘에꼴드창동골목’이다. 

 

되살아난 예술의 흔적, 추억어린 그 길
창동예술촌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1977년 마산역이 이전한 뒤 경전선 폐선 부지를 따라 건설된 대로 길가에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약 100 m에 걸쳐 ‘마산예술흔적골목’이 이어진다. 50년~80년대 마산 르네상스 시절을 재현한 거리로, 마산을 주 무대로 활동했던 예술가들의 작품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커다란 미술관이다. 특히 마산의 푸근함에 반해 이곳에 터를 잡았던 故현재호 화백의 그림을 창동예술촌 작가들이 재현해 놓은 벽화가 있다. ‘마산예술흔적골목’ 중심부에 있는 빨간 벽돌 건물은 ‘창동예술촌아트센터’다. 60여 명의 예술인들의 작업공간과 아트샵, 예술촌 입주 작가들의 상설전시는 물론 크고 작은 기획전시가 열리는 홀도 있다. ‘창동예술촌아트센터’ 앞 ’아고라 광장‘은 다양한 예술 행사와 공연이 열리는 곳. 주말이면 프리마켓도 열리고 노천카페와 노점상들이 펼쳐져 시끌벅적하단다. 근방에는 라디오방송국도 있다. 

 ’MBC경남 창동스튜디오‘인데 이곳에선 매일 오후 <정오의 희망곡> 생방송이 진행된다. 예술촌 입주 작가 10명이 모여 만든 마을기업 ‘창동라온빛’은 지역 문화상품을 개발해 판매하고, 초·중학생 대상으로 예술 교육도 하는 곳이다. 라온빛 작가들은 틈나는 대로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재능기부도 하고, 외진 마을의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주기도 한다. ‘창동라온빛’ 맞은편 골목길은 마산의 옛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들로 꾸며져 있다.  

 

사거리를 지나는 소달구지, 많은 배들이 정박해있는 마산 부둣가, 복잡한 오동동 사거리…. 그때 그 시절 풍경이 새삼스럽다. 추억의 만화와 LP판을 판매하는 ’얄개 만화방’, 고서적은 물론 근현대 기록물과 골동품을 전시 판매하는 ‘꿀단지 고서방’은 박물관이 따로 없을 만큼 희귀한 볼거리로 가득하고, 그 시절 예술인들의 아지트이던 선술집 ‘고모령’도 있다. 사실 지금의 고모령은 위치도 주인도 바뀌었지만 마산 예술인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는 점에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마음이 심겨진 화분, 아름다운 그 길
‘고모령’을 기점으로 시민극장 일대를 아우르는 ‘에꼴드창동골목’은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그야말로 ‘골목’이다. 그 골목마다 개성있는 공방과 아트숍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대부분의 공방에는 방문객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는데 토우 만들기, 물레 체험, 냅킨아트, 테라코타, 초크아트, 편자공예 등 다른 곳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이색 체험거리들이 기다린다. 특히 ‘오월이네’에선 이곳 대표에게 냅킨아트라 불리는 데코파주(Decoupage)를 배울 수 있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유럽 왕실에서 오래 전부터 즐겨왔다는 데코파주는 이름은 어렵지만 생각보다 쉽게 따라할 수 있다. 돌, 나무, 종이, 유리병은 물론, 패브릭이나 가구 등에 냅킨 그림을 찢어 붙이고 색을 칠하는 재밌는 체험이다. 옛 시민극장과 부림시장을 잇는 길은 ‘문신 예술골목’이 조성되어 있다. 마산의 자랑인 조각가 문신 선생을 기리고 그의 예술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골목이다. 그의 작품과 유품을 한데 모아놓은 ‘문신예술기념관’. 외벽에 커다랗게 걸린 문신의 자화상이 눈길을 끈다. 짙은 눈썹, 각진 턱 선이 한 길을 걸었던 예술가의 소신을 짐작하게 한다. ‘문신예술기념관’이 아니더라도 골목 곳곳에 문신 선생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문신예술골목’에 문신 선생의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5년, 그 어려운 시절에 문을 연 학문당 서점은 마산 역사의 산증인. 그 옛날 이곳은 삶의 배움터이자 만남의 장소, 그리고 청춘의 공간이던 곳. 이제는 흰머리 희끗희끗 할 어떤 이의 젊은 날이 서점 어딘가에 남아있을 터다. 맞춤복을 파는 의상실부터, 수선가게, 옷 부속품 판매점 등 향수어린 가게들마다 양철화분이 벽에 걸려있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해 일어난 3.15의거 5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315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조성한 ‘3.15꽃골목’이다. 화분엔 꽃을 기증한 사람의 명찰이 붙어있고 아름다운 글귀가 적혀있기도 하다. ‘이렇게 따뜻한 봄 같은 당신이 내 곁에 있어서 항상 감사합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마음이 전해진다. 

화려한 시절을 간직한 항구
창동예술촌 지척에는 마산의 화려한 시절을 간직한 마산항이 있다. 마산은 조선말이던 1899년 마산항이 개항하면서 부산포, 제물포에 이어 국내서 가장 경제적으로 번성한 도시로 발전했었다. 마산항이 개항한 날 일본과의 해상무역을 위해 마산세관도 개청했다. 마산이 고향인 시인 이은상 선생은 <가고파>에서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푸른 물 눈에 보이네’라고 노래했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마산항이 그리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을까. 비릿한 바다내음이 일렁이는 선착장에 서니 멀리 무학산 자락과 생기 넘치는 어시장, 그 한 귀퉁이에 빨간 등대가 서있는 수채화 같은 항구의 풍경이 펼쳐진다. 아, 하고 나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온다. 머지않아 무학산에 진달래가 피기 시작할 쯤, 다시 와야지. 마산이란 곳은 어쩐지 눈에 밟힌다. 고향처럼 마음이 가고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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