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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는 우리와 살아가는 어울림

  • 작성자최고관리자
  • 작성일2015-05-04 10:42
  • 분류함께 걸어가다
  • 조회수1738

봉사는 우리와 살아가는 어울림
KRISS 유동음향센터 전병수 책임기술원 


인생에서 새로운 문을 여는 시도는 설레는 일이다. 종종 두려움이 따라오지만 두근거리는 기대감이 두려움을 사라지게 한다. 교도소에서 형량을 마친 사람도 새로운 문을 열게 된다. 석방되는 날은 어느 순간 기다림이었지만 막상 문을 열면 녹록치 않은 현실 앞에서 멈칫한다. 쌓아두었던 걱정이 한꺼번에 두려움으로 변해 전부를 차지해버린 것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마음을 어떻게 가다듬어 일어설지 우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출소자들을 일으킬 따뜻한 감성을 묻다
‘누구를 돕는 일’ 어디에서 시작해야할지 막연할 때가 있다. 먼저 다가서서 상대방 마음을 두드려보지만 때때로 오랜 시간이 지나야 열린다. 내가 보호위원회에서 출소자 손을 잡아주고 옆에서 밥 한술을 같이 뜬 지 10여 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많은 출소자를 만나서 이야기 했었지만 눈을 맞추기란 항상 쉽지 않다. “같이식사해요” 건넨 낯선 첫인사에 아무런 말없이 숟가락만 움직이는 것은 다반사. 어쩌다 출소자가 고개라도 끄덕여주면 그날은 정말 다행이다. 


지금도 봉사하는 법무부 복지공단 대전충남지부 보호위원회는 출소자들이 사회에 적응하도록 돕는 곳이다. 복지공단은 법무부 산하에 있는데 출소자들을 위한 기숙사를 마련해 운영 중이다. 각 지역별로 있는 복지공단은 후원회를 두어 출소자들을 세세하게 돕고 있다. 


기숙사는 당장 살 곳이 없거나 일자리를 찾는 출소자들이 머무는 안식처다. 이곳에 있으면서 최소 3개월에서 최대 1년 정도 적응 과정에 참여한다. 가끔 ‘무조건 먹고 살게 만들어 달라’ 어깃장을 놓는 출소자들이 있는데 사회에서 살아갈 방법이 아직 없다며 호소한다. 안타까운 절실함이 느껴져 지나치기 힘들다. 그런 출소자들은 정해진 적응기간보다 좀 더 기숙사에 머물게 해준다. 기간보다 오래 머무는 출소자가 늘어나면 예산이 그만큼 필요한 법. 보호위원회와 복지공단은 함께 기금을 후원받거나 기부물품을 판매한 수익금으로 도움을 준다. 수익금은 복지공단 지부 운영비로 사용되고 출소자들이 쓸 생활필수품이 된다. 


나와 보호위원회 사람들은 대전지방검찰청과 범죄예방 길거리 홍보를 하고 기숙사를 자주 방문해 위문공연과 후원 물품을 나누며 지낸다. 무엇보다 취업활동을 도와주는데 주변 편견이나 개인사정으로 취업이 어려운 출소자는 따로 후견인을 두어 돕는다. 


나만큼은 일대일로 만나는 후견인이 되려 했지만 간혹 후견인을 협박하는 출소자가 있어서 복지공단 직원과 반드시 같이 만나야 한다. 후견인은 출소자와 일대일로 전화통화를 하면서 안부를 자주 묻는다. 건의사항을 복지공단에 후견인이 전달하면서 그분들이 진짜 원하는 것을 점차 알게 된다. 후견인으로 통화를 하면 수화기로 돌아오는 대답은 대체로 툭툭 거리는 무뚝뚝함이다. 나도 그랬다. 매번 친근하게 어려움을 묻지만 다정함은 가능성이 적다. 어떤 후견인은 소소한 실망을 맛보기도 한다. 출소자가 ‘자동차를 사달라’ 직접적인 요구를 하거나 취직된 직장에 해를 입혀 후견인을 난처하게 만든다. 그래도 내가 봉사를 계속하는 이유는 ‘돕는 즐거움’이 있어서다. 

 

웃음전도사로 찾아 가는 한빛봉사단과 더불어 

내가 보호위원회와 맺은 인연은 이랬다. 90년 후반쯤, 내가 참여한 사회봉사활동은 라이온스클럽이었다. 세계적인 봉사 단체였고 사람 좋아하는 나는 그곳에 소속된 사람들이 마냥 좋았다. 그러나 점차 달라지는 분위기에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생각한 봉사와 멀어져갔다.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기울이며 봉사하나로 토론을 벌이던 열정이 작아진 듯 했다. 그 무렵이었다. 복지공단 보호 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지인이 나를 추천했다. 

 

보호위원회 활동은 다양했다. 다만 기숙사 방문자가 매년 줄어드는 것이 내 마음에 걸렸다. ‘신나는 흥이 없다’ 나는 출소자에게 웃음을 선물하고 싶었다. 안 그래도 출소자들 눈빛이 번번이 마음에 걸려 방법을 찾고 있었다. 지인은 ‘찾아가는 한빛 봉사단’을 알려줬다. 주로 노인요양병원에 방문해서 웃음치료를 하는 위문공연단인데 가수로 등록된 봉사자들이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며 흥겨운 공연을 한다. 열띤 호응은 기획과 연출에 뿌듯함으로 되돌아와서 그날은 출소자도, 노인도 활기찬 얼굴로 살아난다. 요즘은 한빛봉사단 웃음치료가 입소문이 나서 얼마 전에는 ‘수자원공사 물의 날’ 행사에 참여해 웃음 공연을 한바탕 펼쳤다. 


바라보는 곳이 같은 사람들 

사활동에 많이 참여하다보니 가족 대화 주제도 자연스레 ‘봉사’가 된다. 처음에 아내는 내가 주말을 봉사활동에 양보하는 것을 싫어했지만 지금 아내는 대체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나와 같이 봉사할 계획이다. 대학에 다니는 딸과 아들은 ‘봉사’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졌다. 딸과는 심리 상담과 행동 치료로 봉사하는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최근에 나의 가장 큰 고민은 ‘학문에는 거짓이 없다. 모르는 것에 간섭하라’ 생각할수록 가슴에 와 닿아서 ‘나는 과연 연구를 하고 있는가’ 스스로 묻는 일이 잦다. 내 분야에서는 최고가 됐을지 몰라도 옆 동료와 교류하며 또 다른 시각으로 연구를 하고 있는지 말이다. 봉사도 마찬가지라고 여긴다. 사람과 사람은 서로 진심어린 관심을 가져야 풍성해지는 관계일 것이다. 나는 사람이 좋아서 무작정 쏟아낸 애정이 봉사였다. 대가를 바라지도 자랑하지도 않았는데 그것을 받은 사람들은 나에게 기쁨을 주었다. 

“1만 시간을 목표로 대전시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내가 반찬 나르기 봉사활동을 하던 날, 동료 봉사자에게 들었던 말이다. 참으로 멋진 말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새로운 목표들이 생겨났고 내 삶의 활력이 되어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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