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 말하다

home 표준이야기 KRISStory 지식을 말하다
모호함과 가능성 너머의 미래
2021-01-07

 모호함과 가능성 너머의 미래
- KRISS 양자기술연구소 박희수 소장 -

 

 

“양자역학을 완벽히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어느 물리학자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양자역학의 세계는 일반인들에게 상당히 어렵게 느껴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양자역학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미시 세계 영역의 물체운동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양자역학이 우리 일상과 영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다. 양자역학의 원리들은 현재 많은 분야에 응용되고 있으며, 무한한 가능성은 우리 미래의 일상을 지금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놓게 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양자기술 연구의 최전선에 서 있는 KRISS
KRISS는 우리나라 국책연구기관 중 양자기술 연구와 가장 가까운 연구기관이다. 양자역학에 대한 연구가 처음 시작된 곳이 바로 독일 국가표준기관(PTB, 연방물리기술청)이란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KRISS 외에도 국내의 수많은 연구기관에서 양자기술에 대한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지만, 과제 단위의 연구가 아닌 연구소 단위로 양자를 연구하는 곳은 KRISS가 유일하다.

 

KRISS는 지난 2017년 양자측정센터를 양자기술연구소로 승격시켰다. 조직개편을 감행하면서까지 KRISS 양자기술연구소(이하 양자기술연구소)에 힘을 실어준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세계를 선도하는 양자기술 최고 연구집단’이라는 비전을 과감히 내세울 만큼 양자기술연구소가 그동안 쌓아온 실력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진국과 비교해 연구가 시작된 시점은 다소 늦었다고 볼 수 있지만, 꾸준한 연구와 도전을 통해 매일 그 격차를 줄여나가고 있다. 양자기술연구소의 박희수 소장은 KRISS에서 본격적으로 양자기술 연구가 시작된 2004년에 KRISS에 합류했다.

 

 

“저는 대학에서 광섬유광학을 공부했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이 분야가 물리학과이긴 하지만 양자역학을 깊게 다루는 분야가 아니라는 거였죠. 당시 양자역학과 관련된 책은 더는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모두 후배들에게 줬습니다. KRISS에 들어오게 되면서 양자역학과 관련된 책을 다시 샀습니다.”


박희수 소장이 들어올 당시, KRISS를 비롯해 우리나라의 양자기술 연구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였다. 연구하는 사람도, 연구를 할 수 있는 인프라도 거의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던 것. 이런 상황에서 박희수 소장은 KRISS에 있는 선배 연구자들과 함께 실험실에 장비를 하나둘 채워 넣는 과정부터 시작했다.


“매우 감사한 점은, 제가 KRISS에 온 뒤 초기 몇 달 동안 오로지 양자기술을 공부할 수 있도록 선배 연구자들이 많이 배려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기간 저는 오로지 공부와 세미나 참석 등에 집중할 수 있었죠. 물론 저에게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과정이었지만, 그러한 배려 덕분에 양자기술과 관련된 준비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양자기술의 더 큰 가능성을 증명하다
당시 박희수 소장이 진행한 연구는 단일 포톤(Photon. 광자) 몇 개를 활용한 양자컴퓨팅에 관한 아이디어였다. 이 아이디어는 조재윤 박사(현 경상대 교수)로부터 시작된 연구였다. 준비를 거쳐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연구는 2011년까지 지속했다. 연구가 진행되는 중간중간 외국에서 열리는 학회에서 해당 연구 내용을 발표할 때면 관련 연구자들로부터 칭찬과 격려가 이어졌다.


“우리의 연구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시에는 꽤 인정받는 연구였던 것입니다. 해외의 다른 연구자들은 우리에게 ‘참 어려운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해주기도 했죠. 2011년 연구가 종료될 때까지 포톤을 4개까지 활용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해당 연구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진행됐습니다. 올해 초에는 포톤 6개를 활용한 양자 네트워킹에 대한 연구 결과를 냈습니다.”


박희수 소장은 포톤 개수를 점점 늘려가며 진행하는 연구와 더불어 포톤 하나를 만들더라도 좀 더 높은 확률로 만들 수 있는 연구에도 집중하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양자기술의 더 큰 가능성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러한 연구의 연장선에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최근 다양한 뉴스를 통해 이슈가 됐던 ‘비밀공유 양자원격전송’ 기술. 고등과학원, 서울대학교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통해 증명한 이 기술은 비밀정보를 분산해 원격전송하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제시했다. 다자간 양자암호통신과 분산화 양자컴퓨터 개발 가능성을 높인 기술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 비밀공유 양자원격전송 실험구성 전경

 

 

“기존 양자정보 전송기술은 1대 1 개념의 단방향 전달 방식이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인 인터넷처럼 다수의 이용자 간에 전송하다보면 정보 유출의 가능성이 존재했죠. 하지만 이 기술은 쉽게 말해 보물 지도를 여러 명이 서로 나눠 갖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보물(정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지도로는 불가능하죠. 즉 원천적으로 양자정보기술의 유출을 차단하는 기술인 것입니다.”

 

▲ KRISS 양자기술연구소 연구팀(박희수 소장, 이상민 양자정보팀장)이 비밀공유 양자원격전송 실험을 하고 있다.

 

 

힘들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양자기술 연구
박희수 소장은 양자기술을 연구하는 다른 연구자들이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농담처럼 ‘지금 내가 하는 이 연구가 과연 쓸모 있는 연구인가?’라는 반문을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만큼, 양자기술 연구는 그 결과와 성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는 것. 그리고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만, 때로는 아무런 결과가 없을 수도 있는 연구라는 것이다.


“양자기술 연구를 하던 초창기에는 아무런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 몇 년간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해외 선도그룹에서 도출했던 결과들을 지표 삼아 연구를 이어가곤 했습니다. 그들에게 메일로 관련 질문이나 의견을 묻는 메일도 참 많이 보냈고요. 양자기술 연구가 힘든 점도 많지만, 그만큼 매력적이고 가치 있는 연구이기도 합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너무도 많기에, 연구의 어려움을 잘 참고 견디면 세상에서 나만 할 줄 아는 전문분야가 생기는 것이니까요.”


덧붙여서 양자기술에 관심을 두고 도전하려는 학생들을 향한 독려도 잊지 않았다. 양자기술은 선진국들이 자신이 선진국임을 보여주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야라고. 그렇기에 양자기술 연구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연구만 잘하면 됐지’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동연구를 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영어나 발표 능력 등 다른 부분 역시 소홀히 하지 않고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양자기술연구소를 이끌고 있지만, 인터뷰 내내 겸손함을 내보인 박희수 소장. 그에게 양자기술연구소장으로서 어떤 목표가 있는지 묻자,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연구소에 속한 모든 연구자가 각자의 연구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하도록 돕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라고 말했다. 소박해 보이지만, 사실 모든 연구자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의 소망처럼, KRISS 양자기술연구소 연구자들이 그런 든든한 지원 아래에서 우리 삶을 좀 더 편리하게, 그리고 좀 더 행복하게 만드는 양자기술을 개발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박희수 소장은 양자기술연구소장으로서 연구소에 속한 모든 연구자가
각자의 연구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하도록 돕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