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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설계하는 건축으로 소통하다
2020-06-25

본질을 설계하는
건축으로 소통하다
건축가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주)유현준건축사사무소 소장)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 등의 저서를 펴내면서 ‘글 쓰는 건축가’, ‘인문 건축학자’라는 별칭을 얻은 유현준 교수. 사람과 사회·사물·자연과의 관계를 디자인하는 것이 건축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좋은 관계를 만들고 갈등을 해소하는 건축을 설계하기 앞서 사람과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공간 속 사람이 어떻게 해야 행복할 것인지 고민하고 그에 대한 솔루션을 찾아낸다. 그 꿈에 가까워지기 위해 건축에 대해 소통한다. 글을 쓰다 얻은 아이디어로 설계하고, 도면을 보다 떠오른 생각으로 글을 쓴다. 매체가 다를 뿐 본질은 똑같다. 그가 본질에서 해답의 가치를 찾는 이유다.

 

 


사람을 이해하는 건축 

 

이과생이었던 그는 수학을 싫어해서 건축학과를 선택했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에 이르러서야 평소 좋아했던 미술, 지리, 물리, 지구과학의 특성이 겹치는 건축학과로 진로를 결정했다. 건축 커뮤니케이터로 자리매김한 계기도 위기를 기회로 만든 차선책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건축사사무소를 차렸지만 일거리가 부족했고 고료 15만원이 아쉬워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연재한 글을 엮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알쓸신잡>, <어쩌다 어른>, <양식의 양식> 같은 TV프로그램의 지식인 패널로 참여하게 되었다. 연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MIT와 하버드대에서 건축설계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출연 당시 ‘학벌 깡패’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창의적인 재능이 필요한 건축에 자질이 있는지 불안해서 검증을 거듭한 결과에요. 심지어 MIT 졸업 후에는 건축을 접고 검사가 되겠다며 로스쿨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지원한 하버드대에 합격한 거에요. 건축으로 승부를 보기로 결심했죠.” 

 

하버드대 졸업 후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받은 설계사 리처드 마이어의 사무소에서 일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전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 모두가 서로의 이야기를 존중하며 의견을 나눴다. 미국 건축설계사 라이선스를 획득한 이후 한국에서 자신의 사무실을 차린 그 역시 마이어의 사무실에서 경험했듯 좋은 아이디어를 우선시한다.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로도 일해온 그는 학생들이 스스로 독창성을 도출하도록 기다린다. 건축 설계를 30년 넘게 하면서 나름의 프로세스가 생겼지만 그 역시 대학교 때에는 우왕좌왕하며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이요? 잠 못 잔 기억밖에 없어요. 시간을 들일수록 좋은 작품이 나오니까요. 과학·기술·미술의 요소가 한 데 모인 건축은 일종의 종합예술이에요. 정답이 없기에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과 경험을 끌어내 과제를 풀어나가요. 건축은 솔루션인데, 그걸 찾는 여러 방법 중에서 본인에게 맞는 걸 알아가는 거죠. 건축학과의 교육은 생각하는 방법의 훈련이에요.” 

 

그가 말하는 건축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자신의 모든 걸 하나도 버릴 것 없이 녹여내 반영할 수 있다는 것. 반면 건축가로서 가장 힘든 점은 건축주를 설득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건축가와 건축주가 모두 만족하는 제 3의 답을 찾아, 생각지도 못했던 건축물을 창조할 때 희열을 느낀다.

 

자신의 모든 걸 하나도 버릴 것 없이 녹여내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 건축의 매력이라고 말하는 유현준 교수

 

 

유현준 교수는 사람과 사회·사물·자연과의 관계를 디자인하는 것이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설계하는 건축에는 그러한 그의 생각이 담겨 있다.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한 지난 10여년 간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동서양 건축을 넘나드는 ‘머그학동’이다. 외부의 정면에서 바라볼 때에는 외벽에 둘러싸인 동양의 궁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서양건축물의 기하학적 요소로 공간을 설계했다. 회전하거나 접히면서 공간이 열리고 닫히도록 구성했다. 이후 5년 전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을 내면서 그의 사무소를 찾는 건축주들이 점차 늘어났다. 그는 완공까지 여러 해가 걸리는 건축 프로젝트도 흥미롭지만 즉각적으로 소통 가능한 글도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그저 건축물을 보고서는 건축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이 명확하게 안 되잖아요? 그렇지만 그가 쓴 글을 읽어보면 그걸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거든요. 실제로 5년 전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을 펴내자 생각과 가치관이 맞는다며 찾아오는 건축주들이 많아졌어요.” 

 

그는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과 여러 저서를 통해 범상치 않은 사고방식을 선보였다. 위치 에너지로 마천루의 높이와 권력의 상관관계를, 이벤트 밀도로 100 m당 가게 입구 숫자와 걷고 싶은 거리의 연관성을 설명한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제일 좋은 방법은 정량화시키는 거에요. 눈에 보이지 않는 건축학적인 이유와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정량화된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지요.” 

 

건축물의 안전을 보장하는 필요충분조건인 역학표준 역시 그에게는 건축 요소를 논하는 언어가 되어준다. 건축가에게 상대방과 신뢰하며 소통하는 기준이 되어주는 역학표준은 언어를 이루는 문장 구조의 단어와도 같다. 

 

“표준화 작업은 물질 세계를 파악하는 기준점이 되어 주지요. 특히나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해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건축에 있어서 표준은 반드시 소통에 필요한 언어예요.”

 

유현준 교수는 세이건의 <코스모스>처럼 건축을 아우르는 지식을 대중에게
전하는 건축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본질을 꿰뚫는 해답의 가치 

 

“재료공학을 전공하는 한 친구는 ‘모든 변화는 재료에서 시작한다’고 말해요. 해외에서는 목재로 20층짜리 빌딩을 만들어요. 목구조 건물이 늘어나면 도시 건축이 훨씬 친환경적으로 바뀔 거에요.”


콘크리트 건물에 균열이 가거나 불이 나서 철골이 강성을 잃으면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한다. 반면 목재는 레고 블록처럼 썩은 부분만 교체할 수 있다. 가공할 때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소재도 바로 목재다. 친환경적인 건축을 위해 목재와 목구조에 관한 측정과학이 활발하게 연구되기를 바란다는 그에게 2005년 KRISS 내외를 나누던 콘크리트 담을 철거하면서 새롭게 세운 정문 이야기를 꺼내자 역시나 남다른 답이 돌아온다. 

 

“저는 SI기본단위의 특성을 형상화한 7가지 소재의 정문 보다 담을 허물어 내부와 외부의 소통을 이뤘다는게 더 참신한데요? 자연에 없던 경계선을 만들었다가 없앤 것이기도 하고요.” 

 

건축으로 세상을 읽는 유현준 교수는 인간을 폭넓게 이해하려면 사회와 일상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살펴보고 근본적인 원인들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거의 모든 걸 집에서 해결할 거란 예측도 있지만, 모이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을 무시한 판단일 수도 있어요. 연약한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이겨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공동체를 이루는 본성 때문이었으니까요.”

 

건축사사무소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건축모형

 

 

격변하는 시대일수록 변치 않는 본질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는 유현준 교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의 최초이자 마지막 꿈이 궁금해졌다. 그의 어릴 적 꿈은 발명가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는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지”라는 탄성을 자아내는 사람이 되는 걸 꿈꾼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디어가 연필 뒤에 달린 지우개에요. 너무 뻔한데 너무 기발하잖아요. 우리가 갖고 있는 여러 불편이나 문제점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기발한 사람이 되는 게 저의 바람이고 꿈이에요. 앞서 이야기했듯 결국 건축은 솔루션을 찾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