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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대한민국 중공업 발전과 국가표준제도의 초석을 닦은 선구자, 故 김재관 박사의 업적을 기리다
- 작성자홍보실
- 작성일2026-03-11 00:00
- 분류KRISS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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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중공업 발전과 국가표준제도의 초석을 닦은 선구자,
故 김재관 박사의 업적을 기리다
- 제1회 정부출연연구기관 과학기술유공자 기념 심포지엄에서 KRISS 이호성 원장 발표 -

▲ 출연(연)에서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된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거목 3인: (왼쪽부터) 한필순 박사, 최순달 박사, 김재관 박사
지난 2월 24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에서 대한민국 과학기술 발전의 초석을 놓은 선구자들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제1회 정부출연연구기관 과학기술유공자 기념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고경력과학기술연우총연합회(이하 연우회)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가 추진 중인 ‘과학기술유공자 선양 및 예우 강화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되었다.
행사는 연우회 한선화 부회장이 기념사업 추진 방안 소개와 유장렬 과학기술유공자지원센터장의 출연(연) 국가과학기술유공자 지정 현황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이어 주제 발표자로 나선 KAIST 김근배 교수는 ‘대한민국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역사와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인정’을 주제로 강연하며, 출연(연)에 몸담고 있는 과학자들이 스스로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자부심을 가지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심포지엄의 하이라이트는 대한민국 과학기술계를 상징하는 3인의 유공자인 故 한필순 박사, 故 최순달 박사, 故 김재관 박사에 대한 업적 소개였다. 특히 이번 소개는 고인들이 생전에 몸담았던 출연연구기관의 현직 기관장들이 직접 발표자로 나서 선배 과학자들의 발자취를 전하여 그 의미를 더했다.

▲ 必 설계기술자립을 다지며 미국으로 떠난 원전설계기술 전수단
(한필순 박사 업적 소개자료 중)
■ “태평양에 빠져 죽으라” 에너지 독립을 일군 '원자력 대부' 한필순 박사
출연(연) 국가과학기술유공자 3인 중 가장 먼저 소개된 인물은 故 한필순 박사였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주한규 원장은 '원자력계의 대부' 한필순 박사를 핵연료 및 원전 핵심 기술 자립을 이끈 '불굴의 리더'로 소개하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한 박사는 1980년대 초 캐나다와의 협상에서 대등한 기술 파트너십을 이끌어내며 원자력 기술 자립의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1986년 12월 12일, 원자로 계통 설계 기술 전수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44명의 연구진에게 ‘필(必‘) 설계기술 자립’이라는 족자를 내걸고 “실패하면 돌아오지 말고 태평양에 빠져 죽으라”며 만세 삼창을 외치게 하였다.
이러한 ‘배수진 리더십’은 곧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1987년 중수로용 핵연료, 1989년 경수로용 핵연료의 양산에 잇따라 성공했으며, 마침내 한국형 표준 원자로(OPR1000) 개발의 기틀을 완성했다. 이 때 확립된 원자력 기술 자립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전력 단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국민들에게 저렴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 시스템의 든든한 근간이 되었다.
주 원장은 “원자력 자립이 없었다면 현재 국민이 누리는 에너지 복지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고인의 헌신을 높이 평가했다. 아울러 그의 숭고한 정신을 후배 연구자들에게 계승하기 위해 제정된 ‘한필순 상’을 통해 그 뜻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 전전자교환기(TDX) 국산화와 우리별 1호 발사를 이끌며 대한민국을 ‘1가구 1전화’ 시대와 인공위성 보유국 반열에 올려놓은 정보통신·우주기술 개척자
(최순달 박사 업적 소개자료 중)
■ ICT·우주 영토 넓힌 '위성의 아버지' 최순달 박사
한국정보통신연구원(이하 ETRI) 방승찬 원장은 정보통신과 우주기술의 개척자인 故 최순달 박사의 업적을 소개했다. 최순달 박사는 NASA 제트추진연구소에서의 보장된 미래를 뒤로하고 귀국하여, 1981년 ETRI 초대 소장으로 부임하며 대한민국 ICT 산업의 기틀을 닦았다.
당시 전화 한 대 가격인 일명 '백색전화' 시세는 약 222만 원으로, 잠실 주공아파트 15평 분양가(287만 원)에 육박할 만큼 전화는 그야말로 귀한 사치품이었다. 최 박사는 이러한 만성적인 전화 적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전자교환기(TDX)의 국산화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는 당시 연구소 1년 예산의 4배에 달하는 240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TDX 사업에 투입하며, ‘실패할 경우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서약서까지 쓰는 사투를 벌였다. 그 집념 끝에 1986년, 우리나라는 세계 10번째로 TDX 개발에 성공하며 ‘1가구 1전화 시대’를 열게 되었다.
그의 도전은 지상을 넘어 우주로 뻗어 나갔다. 1992년 대한민국 최초의 국적 위성인 ‘우리별 1호’ 발사를 성공시키며 우리 강국으로 가는 길을 열었고, 이는 훗날 한국 최초의 위성 전문 벤처 기업인 ‘쎄트렉아이’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방 원장은 “최순달 박사가 강조한 한국인 과학자로서의 정체성과 집념이 현재 ETRI가 추진하는 디지털 혁신의 핵심 원천이자 자부심이 되었다”며 고인의 선구자적 정신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 대한민국 중공업 발전과 국가표준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선구자, 김재관 박사
대한민국이 척박한 환경을 딛고 세계적인 산업 강국으로 우뚝 서기까지, 대한민국 중공업 발전의 청사진을 그리고 국가표준제도의 초석을 닦은 선구자가 있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하 KRISS) 이호성 원장은 직접 단상에 올라, 故 김재관 박사가 대한민국 산업 대전환과 국가 표준 체계 확립에 끼친 위대한 업적을 상세히 소개했다.


▲ (좌) 유학생 조찬회가 열린 뮌헨 포시즌즈 호텔, (우)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 보고서
1. 뮌헨에서 시작된 기적: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인 ‘한국 철강공업 육성방안’
김재관 박사는 1960년대 초, 독일 유학생초청 프로그램을 통해 뮌헨공대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지 최대 기계공업 회사인 데마크(DEMAG)에서 근무하던 정예 엘리트였다.
그는 1964년 12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차관을 빌리러 서독을 방문했을 당시 조국 근대화를 향한 열망을 담아 밤을 새워 작성한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 보고서를 유학생 조찬회에서 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했다. 이 보고서는 훗날 대한민국 중공업 발전의 시초가 된 포항종합제철소(現 POSCO) 건립의 결정적인 단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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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7년 11월 28일 대한민국 제1호 유치과학자로 귀국한 김재관 박사(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박정희 대통령을 KIST에서 접견하는 모습
2. 대한민국 종합제철소 건립의 핵심 주역
그는 독일에서의 안정적인 삶과 고액 연봉을 뒤로하고, 1967년 ‘대한민국 제1호 유치과학자’ 중 한 명으로 귀국하여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제1연구부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김 박사는 1969년 6월 경제기획원 내 신설된 ‘종합제철 건설전담반’의 유일한 철강 전문가로서 기술 분야 반장을 맡아 종합제철소 건립에 대한 기술적 타당성 분석 업무를 총괄하며, 1969년 7월 103만 톤 규모의 한국종합제철사업 계획(안)을 마련하였다. 또한, 종합제철소 건립에 대한 예산 확보를 위해 1969년 11월 대일청구권자금 협상 당시에도 기술적 타당성을 설명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일본 측과의 협상을 주도했다. 이러한 김 박사의 헌신 덕분에 1973년 7월 3일, 대한민국 중공업의 심장인 포항종합제철 1기 설비가 준공될 수 있었다.


▲ (좌) 1970년 작성된 '중공업발전의 기반’ 보고서, (우) 1973년 1월 20일 초대 상공부 중공업차관보로 임명
3. 대한민국 중공업 육성 정책 설계로 산업 대전환을 이끌다
1970년 ‘중공업발전의 기반’ 보고서 작성을 총괄한 김 박사는 1973년 상공부 초대 중공업차관보로 임명되었다. 그는 대한민국 산업 구조를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전환하는 마스터 플랜을 수립하고, 조선 및 자동차 산업의 전략적 육성을 강력하게 주도했다.
중공업차관보 시절 그가 설계한 ‘장기 조선공업 진흥계획’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1위의 조선 강국으로 우뚝 서는 결정적인 기틀이 되었다. 또한, ‘대한민국 고유 자동차 모델 정책’을 통해 대한민국 첫 고유 자동차 모델인 ‘현대 포니’ 탄생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러한 김 박사의 선구적인 정책 설계는 대한민국이 중공업 중심의 현대적 산업 국가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분수령이 되었다.

▲ 1976년 9월 23일 한국표준연구소 기공식에서의 김재관 박사
4. 한국표준연구소 초대 소장으로서 ‘국가표준제도’ 기반을 마련하다
김재관 박사는 1974년 국립공업표준시험소(現 국가기술표준원) 소장으로 재임하며, 대한민국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독자적인 표준연구기관 설립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국가 측정표준 연구기관 설립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그 결실로 1975년 12월, 대한민국 측정표준연구기관인 ‘한국표준연구소(現 KRISS)’가 설립되었으며, 김재관 박사가 초대 소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이후 5년 7개월간 한국표준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재임하며 대한민국 표준 체계의 뼈대를 튼튼히 세우고 초기 연구소의 비약적인 성장을 진두지휘했다. 특히 미국 국립표준국(NBS, 現 NIST)과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여 측정장비 도입, 교육훈련 등 전방위적인 지원을 이끌어냈으며, 이러한 김 박사의 노력 덕분에 한국표준연구소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빠르게 국제적 수준의 측정표준연구기관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재임 시절 김 박사는 “대한민국에 독자적인 시간이 없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굳건한 신념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표준시’를 확립하는 등 과학기술과 산업 선진화의 근간이 되는 국가 표준의 기반을 닦았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헌법 제127조 제2항에 국가표준제도 확립에 관한 내용을 명문화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표준이 국가 운영의 핵심 근간임을 법적으로 확립하는 불멸의 성과를 거두었다. 김재관 박사가 구축한 이 국가 측정표준 체계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전국 290여 개의 교정기관을 통해 산업계 전반으로 퍼져나가며 대한민국 산업을 지탱하는 가장 견고한 뿌리가 되고 있다.

▲ 2025년 11월 6일 KRISS 창립 50주년 기념식과 연계하여
개최한 ‘김재관 초대 소장 흉상 제막식’

▲ 2024년 10월 31일 KRISS 연못 정자 ‘우정’ 현판식 개최
5. ‘우정(宇靜)’의 정신, 미래로 이어지는 유산
KRISS는 김재관 박사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2025년 창립 50주년 기념식과 연계하여 ‘김재관 초대 소장 흉상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또한, KRISS 경영진은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되어 현충원에 안장된 김재관 박사의 묘역을 매년 시무식 직후 참배하며 그의 헌신을 기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2024년 새롭게 조성된 원내 연못 정자의 이름을 김재관 박사의 호를 딴 ‘우정’으로 명명하여 그 정신을 기리고 있다. ‘우정(宇靜)’은 김재관 박사의 호로서 ‘온 우주의 균형이 잡히면 고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동시에 동료 사이의 '우정(友情)'과 사람들이 만나는 정자라는 '우정(遇亭)'의 의미를 모두 아우르는 특별한 명칭이다.
이호성 원장은 강연을 마무리하며 “김재관 박사님이 닦아놓은 표준의 초석은 오늘날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의 근간이 되었다”며, “김재관 박사님의 고귀한 헌신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하며, 그의 선구자적 정신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을 과학기술 강국으로 이끌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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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관 박사님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시는 분이었습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강한 분이셨습니다. 한국의 산업과 과학기술 발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아신 김 박사님은 온 힘과 정성을 다해 국가 표준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김 박사님이 품으셨던 나라 사랑과 실천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일생의 큰 도전이자 행운이었습니다. 이제 후배들이 그 뜻을 이어받아 더 훌륭한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
- 2024년 10월 31일 김재관 박사의 현충원 안장식 날, 故 정낙삼 박사의 추모사 중 일부 발췌 -
* (참고) 故 정낙삼 박사는 한국표준연구소 제1호 유치과학자로서, 기관 설립 초기 김재관 초대 소장님과 함께 대한민국 측정표준의 현대화 기틀을 함께 세운 동반자입니다. 그는 연구소 설립 초기, 미국 국립표준국(NBS, 現 NIST) 기술조정관으로 파견되어 현지 우수 인력 채용과 연구진 교육훈련을 전담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또한, 시간주파수실장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표준시 확립과 전자파 표준 기반 구축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등 기관 발전에 지대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김재관 초대 소장의 뜻을 가장 가까이에서 실천하며 평생을 측정표준 연구에 헌신한 정낙삼 박사는 지난 2025년 7월 30일 영면하였습니다. |

▲ 정부출연연구기관 국가과학기술유공자 심포지엄에서 발표중인 이호성 원장

▲ 정부출연연구기관 국가과학기술유공자 심포지엄 발표자료 제작영상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GMeCdOxJ_ws?si=gN91GAx3Y7UwQm5Q
※ 지난 2월 24일 UST에서 열린 ‘제1회 출연연 과학기술유공자 기념 심포지엄’에서 이호성 원장님이 발표하신 [대한민국 중공업의 기반과 국가표준의 초석을 닦은 선구자, 宇靜 김재관 박사를 기리며] 강연 내용을 영상으로 제작하여 공유합니다.
※ 이번 영상은 원장님의 발표 자료와 스크립트를 바탕으로 AI 보이스 기술을 입혀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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