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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창립 50주년 기념 고(故) 김재관 초대 소장 흉상 제막식 개최
- 작성자홍보실(권혜진)
- 작성일2025-11-25 19:20
- 분류KRISS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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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50주년 기념 고(故) 김재관 초대 소장 흉상 제막식 개최
-과학자들의 헌신과 애국정신으로 탄생한 KRISS의 시작을 기념하다-

▲고(故) 김재관 초대 소장 흉상 제막식을 거행하는 모습
50년 전, “측정표준 없이 산업은 성장할 수 없고, 과학은 신뢰받을 수 없다”는 초대 소장 고(故) 김재관 박사의 신념 아래 한국표준연구소(KSRI, KRISS 전신)가 설립되었다.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한 김재관 박사 흉상 제막식이 11월 6일 행정동 세종홀에서 개최되었다. 제막식은 KRISS 창립 50주년 기념식의 사전 행사로 진행돼, 본행사를 앞두고 KRISS의 시작을 돌아보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 한국표준연구소 소장실에서의 김재관 박사
대한민국 제1호 유치과학자인 김재관 박사는 국내 철강·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이끌었으며 국가표준을 확립해 과학 기술 역량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다.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당시 최고의 직장이었던 한국 산업은행과 서독 정부 장학생으로 동시에 선발되었으나, 학업에 대한 열정으로 독일행을 선택하였다. 이후 뮌헨공과대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독일 최대 기계공업주식회사 ‘데마그(DEMAG)’에 입사해 제철소 설계, 특수강 생산기술 등을 익히며 중공업의 기초가 되는 철강산업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 (좌) 1964년 뮌헨에서 김재관 박사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한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 보고서 (우) 1964년 독일 유학생 조찬회가 진행된 포시즌스 호텔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해 유학생 등 80여 명의 동포에게 조찬회를 베풀었을 때, 그가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을 작성하여 박 대통령에게 전달한 일화가 유명하다. 문서를 받아본 박 대통령은 매우 기뻐하며 “한국의 제철소 설립을 꼭 고려하겠다”며 말하였다.

▲(좌) 1967년 11월 28일 대한민국 제1호 유치과학자로 귀국하여 한국과학기술연구소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접견하는 김재관 박사 모습 (우) 김재관 박사의 업적을 다룬 기념 서적
그로부터 3년 뒤인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은 그를 대한민국 제1호 유치과학자 18인 중 한 명으로 불러들여 오늘날 포항종합제철소의 건설 및 설계를 맡겼고, 이를 발판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5번째의 제철공업국이 된다.

▲(좌) 김재관 박사가 제안한 전로의 모습 (우) 고유모델자동차 정책으로 시작된 첫 자동차 포니1
그는 종합제철소를 기반으로 국내 자동차산업의 성장에도 크게 기여한다. 당시 우리나라의 기술력은 자동차 부품을 수입해 조립하는 수준에 불과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부품 국산화를 넘어 고유 자동차 모델을 개발하는 정책을 수립했다. ‘밥솥도 땜질해 먹는 나라가 무슨 자동차냐’는 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독대하면서까지 사업을 추진한 결과 출시된 해에 내수시장의 44%를 차지한 현대자동차의 포니(PONY)가 제작되었다.
이후 그는 대덕연구단지 1호 입주기관 한국표준연구소의 설립을 주도했으며 초대·2대 소장을 역임해 국가표준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 1976년 2월 11일 한국표준연구소 서울지소 현판식에서의 김재관 박사 (맨 오른쪽)
나라를 일으키기 위한 국가표준의 중요성은 한국전 직후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시 이승만 박사는 과학기술국가 건설을 목표로 선진국의 미터제도를 도입하고자 하였는데, 국제미터제도에 가입하려면 그 나라 인구수만큼의 가입비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이승만 박사는 남북한의 인구를 합한 3000만 명 분의 가입비를 내고 미터협약에 가입했다. 미국 존슨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건넨 선물도 미터원기와 표준분동세트 등 국가측정표준 정비를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 김재관 박사의 노력이 더해져 1975년 한국표준연구소가 설립된 것이다.

▲ 대덕연구단지 1호 입주기관인 한국표준연구소 초기 공사를 지도하는 김재관 박사
연구소의 입주지를 정하기 위해 김 박사는 여러 차례 대전을 방문했다. 현재의 KRISS 부지는 과거 대전 변두리에 위치한 거친 땅이었다. 하지만 뒤로는 산, 앞으로는 강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세를 보고 그는 이곳으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 창립 50주년을 맞아 새롭게 만든 KRISS 헌법조문 현판석

▲ (좌) 1976년 9월 23일 한국표준연구소 기공식에서의 김재관 박사
(우) 1979년 2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표준연구소 시찰 당시, 설명 중인 김재관 박사
기관장 업무를 수행하는 와중에도, 그는 표준이란 헌법에 명시되어야 할 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신념 아래 실제 입법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의 노력은 헌법 제127조 제2항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로 결실을 맺었다.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그의 정신과 노력을 기억하고자 KRISS는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누구나 볼 수 있는 헌법 조문 간판석을 새로 세우기도 하였다. 국가 근간이 되는 헌법에 표준이 새겨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계속해서 일깨우기 위함이었다.

▲ (좌) 故 김재관 박사의 현충원 안장식 (2024.10.31.) (우) 김재관 박사 호를 딴 KRISS 정자 ‘우정’
이후 김재관 박사는 상공부 초대 중공업차관보, 국방과학연구소 부소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2023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되었으며 2024년 10월 31일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 안장되었다. 안장식이 진행된 작년 10월, KRISS 연못가에서는 김재관 박사의 호를 본딴 정자 '우정'의 명명식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여기서 우정은 세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 번째로 집 우(宇), 바를 정(正)자를 써 올바른 자리의 집이라는 뜻, 두 번째로 벗 우(友), 뜻 정(情)자를 써 벗 사이의 깊은 정이라는 뜻, 세 번째로 집 우(宇), 고요 정(靜)자를 써 김재관 박사의 호(號)이자 온 우주의 균형이 잡히면 고요하게 된다는 뜻이 그것이다.

▲ KRISS 이호성 원장의 환영사
이날 제막식 내빈으로는 구혁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 김영식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최성아 대전시 정무경제과학부시장, 김명자 KAIST 이사장, 정부출연연구기관장 등 산·학·연·관 관계자들이 참석하였다. KRISS 이호성 원장은 “측정 불모지에서 이룩한 반세기의 성과는 설립 초기 유치과학자들의 헌신과 구성원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만든 결과”라며, “앞으로의 50년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상의 기준을 만드는 글로벌 표준기관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밝혔다.

▲(좌)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우)김원준 삼성글로벌리서치 대표
김재관 박사의 아내인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은 인사말씀에서 남편과 관련한 일화를 공유하며 추억을 되새겼다. “남편이 3개월 정도 집에 오지 않자, ‘이러려고 결혼했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무렵 박정희 대통령이 차관보 아내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남편들이 호텔에서 밤을 새는 것은 나라를 세우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죠"며 '한국경제개발계획 4차 5개년 계획'이 만들어지던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남편은 살아생전 정말 열심히, 뜻깊은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 남편은 정말 온통 나라를 위해서만 일했던 분이었죠"라고 말하며 고인을 애도했다.
김 박사의 아들인 김원준 삼성글로벌리서치 대표 또한 “제게 아버지는 늘 밤낮없이 자료를 펼치고 고심하며 ‘나라를 위해 이런 걸 해야 한다’고 말하던 분, 동시에 누구보다 다정하고 자상했던 분으로 기억된다”며 그의 노력을 회고했다.

▲ 고(故) 김재관 박사의 흉상
이처럼 나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였던 김재관 박사 노력의 결실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었다. 그가 황무지와 같던 이곳 대덕연구단지에서 그려 보았던 미래의 모습 그대로, KRISS 임직원들은 국가표준의 발전과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힘쓰고 있다. 앞으로 세종홀 중앙에 자리하게 될 그의 흉상은 50년간 이어져 온,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KRISS의 역사와 함께 자리할 것이다.
글/사진 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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