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ISStory
TOP50년과 함께한 사람들 - 국민의 응원과 세계의 주목을 받는 KRISS가 되길. 신용현 12대 원장 -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2024-12-27 00:00
- 분류With KRISSian
- 조회수1200
신용현 원장에게 KRISS는 애정이 남다른 곳이다. 제일 처음 근무했던 연구1동부터 물리동, 행정동까지 캠퍼스 곳곳에 동료들과 함께한 32년의 세월이 묻어있고 가족과의 추억도 남아 있다. 제2의 고향이라 해도 부족할 만큼 정든 KRISS를 충분한 준비 없이 떠났었기에 아쉬움이 컸던 신용현 원장. 반가움과 그리움이 교차했던 그의 목소리를 지면에 옮겨 본다.
행복했던 KRISS에서의 30년
“32년 근무하면서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키우고 했으니 제 추억이 다 KRISS에 있다고 할 수 있죠. 돌아보니 KRISS를 떠난 게 8년 전이더군요. 세월이 빠르다 싶으면서도 어제까지 KRISS에 다
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KRISS인들에게 인사를 전할 기회가 주어져 기쁘고 반갑다며 말문을 연 신용현 원장. 1984년 당시 질량연구실(압력진공그룹)에서 연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질량센서 및 압력센서 개발에 참
여했으며 다양한 진공장비 개발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산업에 기여했다.
한결같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아요.
제게 KRISS는 그냥 편한 곳이었어요. 실험실이 자주 이사를 해서
곳곳이 익숙하고 집보다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니까요
“실은 공학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담임 선생님의 만류가 심했어요. 어떻게 보면 제 의지와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절충한 선택이 물리학이었죠. 공학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였는지, KRISS에
서도 기초연구보다는 산업에 활용할 수 있는 응용 연구에 집중했어요.”
신용현 원장은 10여 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한 이후 압력진공그룹장, 진공기술센터장, 전략기술연구본부장, 우주환경기반신기술융합사업단장을 거쳐 12대 원장에 당선돼 KRISS를 이끌었다.
“원장 취임식 때 감회가 더 특별했던 게, 같은 장소에서 30년 전 입사시험을 봤거든요. KRISS에서 보낸 세월이 스쳐 갔어요. 한결같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아요. 제게 KRISS는 그냥 편한 곳이었어요. 실험실이 자주 이사를 해서 곳곳이 익숙하고 집보다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니까요.”
출근하기 싫은 적이 없었다고 말하면 믿기 힘들겠지만, 신용현 원장은 정말 그랬다. 물론 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있었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연구하는 것이 행복했다. 인복이라고 해야할까? 각각의 영역에서 실력을 갖춘 동료들과 조합을 이룬 것이 연구성과들로 이어졌고, 훗날 원장의 자리까지 서게 해주었다.
기관장은 ‘나 아닌 누군가가 더 잘할 수 있는 역할’이라 여겼던 그가 마음을 바꾼 결정적인 이유는 단 하나. 지난날 자신이 그랬듯, 자긍심과 사명감으로 다닐 수 있는 KRISS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신용현 원장은 취임 후 ‘국민연구소’를 KRISS의 새로운 목표로 내걸었다. 외부로부터 실력을 인정받는 연구소, 내부적으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연구소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국민연구소가 되려면, 내부 구성원들 간의 소통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경영진이나 윗선에서 결정한 사항을 실무자들에게 하달하는 게 아니라, 어떤 배경과 과정 속에서 그
런 결정이 나오게 됐는지 공유한다면 능률과 성과를 높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차원에서 2주에 한 번씩 전 직원을 대상으로 기관에서 진행된 일들을 브리핑하고 질의응답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신의 분야만이 아니라 다른 부서, 다른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폭넓게 안다면, 보다 활발하고 효과적인 융합이 가능할 것이다. 이에 신용현 원장은 ‘원내 발표회’라는 제도를 새롭게 도
입하는가 하면, 원장을 비롯한 경영진 및 부서장들이 KRISS를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외 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지원했다.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새로운 길
KRISS가 임직원 모두의 자랑이 되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기관이 되길 바랐던 신용현 원장. 그의 정계 진출은 KRISS 내에서도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었다. 자신은 아니더라도 과학기술계를 대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정계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거취를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앞선 공천에서 과학기술계의 대표 주자로 불리던 후보들이 모두 제외된 상황에서 국민의당 비례대표로 추천된 신용현 원장. 그는 깊은 고민 끝에 비례대표를 수락했고 20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제가 비례대표를 수락하지 않으면 국회에서 과학기술계를 대변할 2개의 의석이 없어지는 상황이었어요. 당시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제게 왔던 것이죠. 그렇게 정계에 진출한 후, 국회에서 가장 놀란 것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어요. 생각지 못했던 재정적, 행정적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정계에서 과학기술계를 대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신용현 원장은 우리나라 기초과학 발전과 4차 산업혁명 선도를 위한 과학기술 및 교육 정책 마련을 위해 열심
히 의정활동을 펼쳤다. 또 한편으로는 다문화 가족과 북한 이주여성 등 소수를 위한 정책 활동에도 힘썼다. 한 인터뷰에서 ‘정치는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잘 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던 신용현 원장은 과학기술인 출신 국회의원으로서 소신을 다해 일했고, 지금은 한 발 뒤로 물러나 과학기술과 정치, 사회의 발전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신진 여성 정치인을 지원하는 일에 진심인 신용현 원장. 그는 여성 과학자, 여성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능성 있는 인재를 육성하고 더 살기 좋은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진정한 국민연구소가 되길
“KRISS인들이 가진 능력과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더욱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해 줬으면 합니다. 세계 6위권 표준기관을 넘어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실현해 나가는 KRISS, 측정표준을 토대로 미래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새로운 분야를 개척 및 견인해 나가는 KRISS가 되길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설립 50주년을 맞은 KRISS를 향해 진심 어린 축하와 격려를 보내는 신용현 원장. 그는 현재 KRISS가 양자 분야를 선도하고 있음을 언급하며, 측정표준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이미 그 분야의 경쟁력이 일정 수준 이상에 올라섰다는 의미이기에, KRISS인들이 국가 과학기술 발전과 국민 삶의 질 발전에 기여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연구개발 및 확산에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KRISS가 반세기 동안 이룬 성장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잠재된 가능성은 더 위대하다. 측정표준은 새로운 산업을 창조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분야이며 KRISS는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 KRISS가 짊어진 역할과 책임은 무겁다. 하지만 신용현 원장이 강조하듯이 KRISS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신용현 원장이 꿈꿨던 진정한 국민연구소로 성장해나갈 KRISS의 미래 100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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