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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과 함께한 사람들 - 세계 측정표준을 선도하는 KRISS가 되길 김명수 10대 원장 -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2024-07-10 00:00
  • 분류With KRISSian
  • 조회수129

리더의 자질을 얘기할 때 소통은 빠지지 않는 단어다. 생각해 보면 모든 불협화음은 소통의 장벽 때문에 일어나고, 그러한 불안정한 상태에서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김명수 원장이 3 년의 재임 기간 중 가장 힘썼던 것은 바로 소통이었다. 한 손으로 칠 수 없는 손뼉처럼 일방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소통이기에, 그는 연구원들을 만나고 대화하며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해외유치과학자로 들어와 원장으로 퇴임하기까지 KRISS에서의 30여 년은 김명수 원장에게 성취와 보람을 준 감사한 시간이었다.


 


연구원으로 12, 보직자로 12

10여 년 전과 다름없는 푸근한 웃음으로 마주한 김명수 원장은 긴 여행을 마치고 어제 막 돌아왔다며 인사를 건넸다.

일을 그만 두고 나서 얻은 게 있다면 출퇴근으로부터의 자유에요. 굳이 일찍 일어나 서둘러 나갈 필요가 없으니까요. 다만 연 구원 퇴직 고경력인들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을 기 획하여 진행하고 있어서 나름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퇴직자들이 마주하는 가장 큰 변화는 매여 있지 않은 생활이다. 그 자유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성공적인 은퇴 후 인생을 위한 숙제일 것이다.

연구기관 퇴직자들의 모임인 연우연합회와 전임 출연기관장 협의회에서 진행하는 학생 대상 멘토링이나 기업 기술지원 사 업을 통해 여전히 과학기술인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있 는 김명수 원장. 그는 현재의 삶을 꽤 만족스럽게 보내고 있는 듯 보였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어 요. 당시 해외유치과학자라고 해서 해외 유학생들과 국내 연구 기관을 연결해 주는 한국과학재단의 프로그램을 통해 KRISS와 인연이 닿게 됐습니다. 당시 강홍렬 소장님이 KRISS에 배터리 연구그룹을 만들면서 저를 영입하신 거죠.”

그렇게 1987KRISS에서 연구를 시작한 김명수 원장은 국내 최초 리튬전지 개발에 참여하는 등 12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한 이후 산업측정표준부장, 연구기획부장, 전자기표준부장, 표준보 급부장을 거쳐 제10대 원장까지 다시 12년간 보직자로서 조직 을 이끌었다.

 

소통하는 KRISS 세상에 기여하는 KRISS

직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했던 것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 다. 기관장으로서 대외적인 활동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부 구성원들이 만족하는 기관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는 원장 취임 후 틈날 때마다 연구실 투어를 시행했고, 2주에 한 번은 현장 연구원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하이파이브 미팅을 가졌다.

김명수 원장은 원장 취임 이후 수직적, 수평적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힘썼다. 그것은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조기에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인사고과제 개편을 단행하기도 했다. 기존의 평가는 개인 실적 위주로 이루어지다 보니 연구원들이 개인 논문과 특허 등 가시적인 산출물에 치중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그는 개인 임무에 맞춘 평가시스템 하에서는 큰 성과가 나올 수 없다고 판단하고, 각 부서의 목표에 따른 개개인의 미션 달성 여부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새로운 인사고과제를 도입했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모두가 환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료를 평가의 경쟁자로 생각한다면 협력은 잘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김명수 원장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는 대신 직원들을 설득하는 데 힘썼다.

2010년에는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한국전 참전국을 비롯한 개도국 표준기관에 대한 협력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KRISS는 필리핀, 터키, 에디오피아, 콜롬비아 등 참전국과 베트남, 몽골, 말레이시아, 이집트 등 개도국에 교육훈련 및 측정설비를 제공함으로써 해당국들이 자체적으로 측정표준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도왔다.

“2010CPEM 행사에 개도국 표준기관 대표들을 우리나라에 초청해 연구원 투어를 진행하고 감사패도 전달했죠. 참전국에서도 많이 왔기 때문에 육군사관학교 전쟁박물관에도 방문했었는데, 육사의장대에서 환영 공연을 준비했더군요. 저도 사전에 듣지 못한 상황이라 고맙고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서로의 다음을 향한 응원

연구원의 정년을 마치고 퇴직한 김명수 원장의 진로는 대다수의 예상과는 달랐다. 대전시 초대 과학부시장에, 다양한 행정업무와 대외활동 경력을 갖춘 김명수 원장이 임용된 것이다.

그때 주변 사람들 대다수가 다 계획이 있었으면서 숨긴 것 아니냐는 반응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미리 계획한 건 아니었어요. 정년 퇴임을 앞두고 향후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대전시로부터 제안을 받았고, 당시 저는 여러 후보 중 한 명이겠거니 생각했죠. 그런데 며칠 뒤에 담당 국장이 전화를 해서는 다음 주부터 출근해 달라며 업무보고부터 하더군요.”


 


대전시와 출연연이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여러 사업을 추진했고,

과학도시 대전이 과학기술 기반의 미래 동력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연구자로서의 경력과 보직자로서의 경력, 다양한 대외활동 경험을 통해 사회에 새로운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그는 대전시 과학부시장직을 맡았다.

대전시는 물론 전국에서도 최초의 과학부시장이 된 그는 큰 책임감을 느꼈고, 시의 직원들이 특별하게 바라볼 정도로 적극적으로 일했다.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대덕의 출연연과 대전시, 대전시민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이었다. 대전에서 대덕특구는 외딴섬처럼 인식되었던 게 사실이다. 김명수 원장은 대전시와 출연연이 교류하고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여러 사업을 추진했고, 과학도시 대전이 과학기술 기반의 미래 동력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KRISS 원장 직무 수행에 있어 소통을 방점에 뒀듯이, 대전시 과학부시장으로서도 소통을 통한 협력의 시너지 창출에 주력했던 김명수 원장이다.

 

행정가로서의 제2의 인생을 지나 은퇴 후 인생을 보내고 있는 김명수 원장. 오랜만에 찾은 KRISS에서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물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라고 하면 국민들은 어떤 일을 하는 기관인지 잘 와닿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과학기술계에서 KRISS는 과거부터 착실하게 성과를 쌓아온 연구기관의 표준과도 같은 곳입니다. 세계 표준기관 중 5~6위권에 드는 뛰어난 연구 수준을 갖고 있죠. 이러한 국제적인 위상에 대해 KRISS인 모두 자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KRISS는 지난 50년간 눈부신 성장을 이뤄왔다. 앞으로의 50년은 지속적인 성장을 넘어 세계 표준을 선도하는 기관으로의 성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김명수 원장. 그리고 연구원 한명 한명이 보람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기관이 되길, 한 사람의 KRISS인으로서 진심 어린 바람을 전하는 그다.

김명수 원장에게 KRISS는 애정과 자랑의 대상이다. 지역사회의 과학문화 대중화를 위해 활동하는 김명수 원장의 멋진 은퇴 후 인생을 KRISS 역시 자랑스럽게 바라보며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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