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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시대를 추억하는 여행

  • 작성자최고관리자
  • 작성일2019-10-01 15:01
  • 분류함께 걸어가다
  • 조회수1137

아날로그 시대를 추억하는 여행  

군산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문화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유일한 도시, 군산은 일 년 내내 여행 성수기이다. 꽉 막힌 도시가 답답하고, 이중 삼중 철벽으로 자신의 정보를 보호하며 살아야만 안전하게 사는 이 시대에 멀미를 느낀다면 군산으로 떠나보는 것 어떨까. 그곳에 가슴을 뻥 뚫어줄 바다가 있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흐르던 어릴 적을 추억하게 하는 그때 그 시절이 있다. 군산에는 오늘의 일상을 감사하게 만드는 소중한 역사가 숨 쉬고 있다.
[글: 김진희, 사진: 김병구]

 

 

 

 

추억은 방울방울

 

입추가 지나가기 무섭게 신기하게도 찌는 듯한 더위가 가셨다. 아직도 늦여름의 기운이 남아 있지만, 산책하기 더없이 좋은 날씨였던 어느 날, 한참 전부터 별렀던 군산 여행길에 올랐다. 군산에 도착해 제대로 아날로그 여행을 해보겠다는 심정으로 찾은 첫 번째 코스는 경암동 철길마을이었다.

 

도심 한가운데 철길이, 그것도 집과 집 사이에 있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던 탓에 궁금증이 컸던 곳이었다. 도착해보니 지금은 가게로 변해버린 나지막한 집들 사이에 철길이 놓여있었다. 이 철길은 옛 군산역에서 제지업체인 페이퍼코리아까지 제품을 실어 나르는 용도로 쓰였던 열차 노선이었다. 일명 페이퍼코리아선. 길이가 약 2.5 km 되는 이 노선은 1944년 4월 4일 개통된 이후 2008년 6월까지 꽤 오랜 시간 동안 운행되었다.

 

열차에서 손만 뻗으면 집들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놓인 철길 위를 달리던 그 시절. 열차는 매우 느리게 운행되었지만, 역무원은 원활한 통행을 위해 요란하게 호루라기를 불고 고함까지 쳤다고 한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이면 밖에 널어놓았던 고추도 들여놓고 나가 놀던 강아지까지 불러들였단다. 머릿속으로 그 시절을 상상해보니 마치 영화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그려졌다.

 

마침 옛날 교복을 입고 오늘의 추억을 만드는 많은 사람이 철길을 따라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도심을 벗어나 지루함, 무료함을 달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없이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누리며 말이다. 철길 끝에는 학교 앞 문방구를 떠오르게 하는 추억의 상점들이 있다. 종이딱지와 불량식품들이 한가득인 그곳에서 아폴로 하나를 구입해 주머니에 넣었다. 여행을 달달하게 만들어줄 간식으로 쓸요량으로 말이다.

 

 

 

 

진포대첩을 기리며

 

경암동 철길마을로 소소한 동네의 역사를 즐겼다면 다음 여행지는 좀 더 규모가 큰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볼 생각이었다. 무려 세계 최초의 함포 해전으로 기록된 진포대첩이 군산에 전적지를 두고 있다고 하니 마침 바다가 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군산 내항으로 향하니 진포대첩의 전적지라는 곳에 꽤 규모가 큰 진포해양테마공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진포대첩은 고려 말 최무선 장군이 왜선 오백여 척을 격퇴시킨 해상 대첩이다. 그것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이 공원에는 우리나라 육해공군 퇴역 장비 13종 16대가 전시되어 있는데 현역 시절 못지않은 위용을 뽐내며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 중 ‘676’이라고 적힌 위봉함은 실내에 큰 전시실을 마련하고 있어 많은 사람이 그곳을 오갔다. 궁금증을 안고 그 안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군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와 군함 내부의 모습을 상세히 볼 수 있었다. 군함 내에서의 생활을 간접 체험까지 해볼 수 있어, 꽤 흥미롭게 관람하고 체험해볼 수 있었다. 바다와 잇닿은 군산이 얼마나 이 나라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내왔는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위봉함 선상에 오르니 오랜만에 경험하는 바다 냄새와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작고 작은 생명들이 꿈틀대고 있을 갯벌의 풍경도 눈을 사로잡았다. 멀리 내다보니 평화롭게 파도치는 군산 앞바다의 풍경이 새삼 마음을 울렸다. 이 평화를 즐길 수 있도록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고가 있었을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근대로의 시간 여행

 

진포해양테마공원을 나와 향한 곳은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군산 근대건축관이었다. 항구도시 군산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쌀을 강제수출했던 곳이었기 때문에 일본 상인들의 경제적 중심지였다. 군산이 근대문화유산의 산실로 알려진 데는 그 시절에 존재했던 근대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한몫한다. 양림동 근대문화유산거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축물들에서 그것의 실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군산 근대건축관은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을 보수하고 복원한 곳이다. 들어서자마자 독특한 조형물이 먼저 눈에 띄었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 고태수라는 인물이 이 은행을 다녔던 것으로 묘사돼 이를 표현한 조형물이었다. 아픈 시대상을 담은 문학은 후대 사람들에게 그 시절 실제 사람들의 역사를 반추하게 한다. 더욱이 그 시대와 함께 숨 쉬었던 건축물에서 그것을 기리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더불어 당시 수출입 상품의 관세 업무를 맡던 구 군산세관 본관도 근처에 있어 둘러보았다. 독일인이 설계했다는 이 건물은 빨간 벽돌과 파란 대문이 눈에 띄는데 벨기에에서 건축자재를 수입해 유럽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중세 유럽풍으로 지어진 구 서울 역사와 한국은행 본점과 더불어 국내에 현존하는 3대 근대역사 건축물 중 하나라고 한다.

 

이 건물의 내부는 2017년 호남관세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물관은 8개의 테마로 나눠 1450점의 세관 유물과 사료를 전시하고 있다. 군산세관이 처음 세워지던 1899년의 모습부터 그 연혁을 살펴볼 수 있도록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관의 역사에 대해서도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었다. 특히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세관 관복 체험과 스탬프 투어 프로그램도 있어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곳에서 나와 발길을 옮긴 곳은 군산근대미술관이었다. 미술관의 첫인상은 깔끔하고 독특하고도 낯설었다. 이곳은 원래 구 일본 제 18은행 군산지점이었다고 한다. 원래 무역 관련 대부업을 맡았던 은행이었는데 역사의 흐름 속에 본래의 업무는 상실하고 2008년 2월 등록문화재 지정 후 군산근대미술관으로 활용되는 중이었다. 이곳도 지금 돌아본 건축물들과 마찬가지로 수탈의 역사가 행해졌던 곳이지만 이제 그 안에는 한국인들의 정서와 혼이 깃든 수묵화나 병풍 등의 작품들이 당당히 전시된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터널

 

군산에서의 마지막 행선지는 해망동이었다. 이름대로 바다가 훤히 보이는 마을. 저물어가는 하늘 탓인지 관광객들로 들끓었던 이전 장소들에 비해 휑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수산업의 쇠퇴와 함께 동네마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이곳은 하늘로 굽이쳐 돌아가는 좁은 골목길에 멈춘 시간과 쓸쓸함이 묻어있었다.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수십 년 전 상점 간판들이 낡은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느낌마저 들었다. 가게가 성행했던 시절의 활기는 사라졌지만, 옛 시절이 그리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해망동 곳곳의 풍경을 눈과 마음에 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새로운 것이 오래된 것들을 대신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 멈춘 시간을 고스랑히 간직하고 있는 해망동은 존재만으로도 애틋하게 여겨졌다.

 

해망동에도 국가등록문화재 제184호로 지정된 문화재가 있는데 군산 해망굴이 그것이다. 그냥 보면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터널에 불과하지만, 일제강점기엔 이곳이 번화가였다고 한다. 군산 중앙로와 수산업 중심지인 해망동을 연결하고자 만든 해망굴 주변엔 군산신사와 신사광장, 공화당, 도립군산의료원 등이 있어 사람들의 통행이 잦았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는 군산에 주둔한 북한군 지휘본부가 터널 안에 자리해 연합군 공군기의 공격을 받았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해망굴 입구에는 총탄의 흔적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드문드문 사람들이 이곳에서 햇빛을 피하고 있었다. 이제 차는 지나지 않는 터널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곳이었다.

 

군산이라는 도시 곳곳 특유의 풍경과 감성이 여러 영화에 담겼는데, 해망굴도 여러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 영화 속에서 봤던 장소에 직접 와보니 그 스토리와 감동이 새롭게 다가왔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연들과 그 흔적이 생생히 남아있는 군산. 이 도시가 간직한 역사 자체가 그 어떤 영화보다 인상 깊게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해망굴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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