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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소심한 과학자, 사람들을 만나다
- 작성자최고관리자
- 작성일2019-07-30 08:49
- 분류함께 걸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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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과학자, 사람들을 만나다
물리학자 김상욱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획일적 기준으로 산출된 평균 속에서 개인의 다채로운 고유성은 소외된다” 경향신문 문화면 뉴턴의 아틀리에라는 연재코너의 최근 기사 제목이다. 일본과학미래관에서 열린 체험 전시를 보고 일반교양을 위한 미술교육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했다는 이야기, 하나의 경로만 정상으로 간주하면 개인의 고유성은 소외된다는 생각 등 문화면에 퍽 어울리는 내용이다. 기사 맨 아래 저자를 소개하는 박스에는 딱 봐도 ‘과학자’ 같은 김상욱 교수의 사진과 간략한 이력이 적혀있다. 문화면에 글을 연재하는 과학자. 김상욱 교수의 또 다른 수식어는 과학커뮤니케이터이다. [글: 성혜경, 사진: 이용국]
책 한 권이 열어준 길
또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판사나 변호사가 돼야지,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한 권의 책은 평범한 꿈을 꾸던 김상욱 교수를 물리학자의 길로 인도했다.
“너무 허름한 책이라서 지금 보면 안쓰럽기까지 해요. 내가 어떻게 이런 책 하나 때문에 물리학자가 되겠다고 했을까, 싶은 거죠. 하필 제가 그때 읽은 것이 양자역학에 대한 책이었고, 그 내용이 너무 감명 깊어서 수십 번 읽으며 물리학자의 꿈을 꿨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진로를 고민하던 그에게 아버지는 말없이 책 몇 권을 던져주셨다. 어떤 책은 열심히 읽었고 어떤 책은 대충 훑어봤고 또 어떤 책은 펼쳐보지도 않고 던져뒀다. 그 많은 책 중에 양자역학에 대한 이야기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운명인 것 같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이력
“연구자로서의 이력은 특별한 게 없어요. 제 성격이 의외로 내성적이어서 제 인생에서 ‘멋있는 결정’ 같은 건 없었죠. 한 사람의 인생을 놓고 볼 땐 평탄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생일 겁니다.”
꿈꾸던 물리학자가 되기까지 한 번도 공백기라는 게 없었다. 예를 들어 1년 재수를 했다든지,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몇 달이라도 소속된 곳이 없었거나 하는 일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소심하고 겁이 많은 탓’에 안정되고 예측 가능한 모범적인 길만 걸어왔다. 하지만 딱 한 번, 대범한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처음에는 실험물리학을 했죠. 그런데 하다 보니 제겐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잘 안 맞더라고요. 지도교수님과도 맞지 않았고 분야 자체도 안 맞는 것 같았죠. ‘물리적인 아름다운 이야기’ 같은 건 생각할 여지조차 없다고 느꼈으니까요. 그래서 아예 물리를 때려치울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어요. 뭐… 많은 사람이 겪는 고민이죠.”
실험실 풍경은 마치 공장과도 같다. 실험을 위해서는 기존에 있던 장비를 들여와 다 뜯고 분해하고 정확도를 높이는 등의 ‘작업’을 해야 한다.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돌아가는 게 아니다. 실험을 위한 험난한(?) 준비과정이 그에게는 버텨낼 수 없는 힘듦이었다. “어떻게 보면 못 버틴 거고, 좋게 포장하면 제 길이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대학원 때 바꾼 전공이 이론물리학이었어요. 그런데 다행히도 이론은 잘 맞더군요.”
실험물리학에서 이론물리학으로 경로를 튼 것은 김상욱 교수의 평탄한 인생에 있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당시에 분야를 바꾼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분야는 물론 지도교수를 바꾸는 일도 대한민국 여건에서는 보통 금기시됐다. 특단의 결정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스스로 택한 길이었지만 그 또한 쉽지만은 않았다. ‘상대론적 혼돈 및 혼돈계의 양자 국소화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독일 막스-플랑크 복잡계 연구소 연구원으로 갔을 때였다.
“박사학위 받고 교수가 되기 전까지는 계속 계약직 연구원 생활을 해야 했어요. Post-Doc(박사후연수연구원) 과정을 5년 거친 뒤 독일에 가게 됐을 땐 정말 풍운의 꿈을 품고 나갔죠.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땐 자리를 잡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계약 기간은 끝나가고, 결혼해서 집에는 아이가 울고 있고… 그때 제가 서른셋, 서른넷 정도였는데 참 암울하더라고요.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돌아오는 건 계약직 인생밖에 없는 것 같았죠.”
금의환향을 꿈꾸며 떠난 독일이었지만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내가 왜 이 길을 시작했을까, 하는 후회도 들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충분한 결과를 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도 컸다. 학문이 힘든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를 괴롭혔다. 만약 그 상태로 독일에서 몇 년을 더 보냈다면 물리학을 관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낙심과 자괴감에 빠져있던 그에게 서울대 BK조교수에 임용됐다는 희소식이 들려왔고 한국에 돌아온 지 6개월 만에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로 부임했다.
과학커뮤니케이터라는 두 번째 도전
“제가 교수가 된 게 2004년이었는데,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이공계 위기’라는 얘기를 많이 할 때였어요. ‘이건 안되겠다. 이 상황을 바꿔야겠다’는 움직임이 과학계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역시 대한민국의 과학자로서, 지식인으로서 같은 생각을 했다. 그때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연구센터에 과학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는 과학문화팀이 만들어졌고, 김상욱 교수와 친분이 있던 정재승 교수가 위원장을 맡았다. 정재승 교수의 권유로 과학문화 활동을 시작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불순한 마음이었어요. 물리학자의 인생에서 이런 일은 낭비잖아요. 하지만 이공계에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내 시간의 일부를 낭비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희생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아까워하며 과학문화 활동을 시작해, 사람들을 만나고 과학을 전하면서 그의 마음은 바뀌었다. 생각보다 재미있고 보람도 컸다. 점점 과학문화 활동에 쏟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벌써 15년째 과학으로 소통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과학자로서의 역량은 조금씩 떨어져 가는 게 사실입니다. 이론물리학자들끼리 하는 농담인데, 30대 지나면 끝이라고 해요. 하지만 소위 과학문화 확산, 과학커뮤니케이션이란 것은 시간을 쓸수록 더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내 시간을 다 쏟아서 논문을 써도 고작 몇 명 볼까 말까 하는데, 이건 내가 조금만 신경 쓰면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어요. 그게 생각보다 큰 보람이더라고요. 물론 연구에서 느끼는 재미나 새로운 걸 발견했을 때의 희열에 비할 수는 없지만 말이죠.”
과학문화 활동을 하며 과학자로서 연구가 아닌 또 다른 것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고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급격하게 더 열심히 하게 된 시점이 2015년 무렵이에요. 극도의 정치적 혼란과 사회 불안 속에서 위기감을 느꼈죠. 전 과학자로서 그 원인이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감정적인 선택이 아닌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과학적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3~4개의 신문에 동시에 칼럼을 연재하고 그 칼럼들을엮어 『과학공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전까지는 불순한 의도였다면 이때부터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과학문화를 전했다. 지면을 통해, 미디어를 통해 ‘과학적으로 생각하자’,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태도이다’라고 외치고 다녔다. 확고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말이다. 그러면서 과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생기고 재미를 느끼게 됐다.
“그동안 좁은 분야를 깊이 파고들었다면 강연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도 하게 됐습니다. 과학문화 활동을 하면서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고민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들에게 과학을 전파하는 것보다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로 얘기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요.”
예술이나 철학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과학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던 김상욱 교수는 이제 철학책을 읽고, 매주 미술관을 찾으며, 예술을 통해 과학을 얘기하는 글을 쓴다. 인간에 대해 이해하게 됐고 지식도 내면도 성숙해졌다.
“<알쓸신잡>에 출연할 때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그런데 순간적으로 내가 사는 이유가 뭔지, 내 꿈이 뭔지 안 떠오르더라고요.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살았더라고요. 어쩌면 지금의 나이에는 뭔가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는 것보다는 현재 주어진 자리에서 더 열심히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점점 더 다양한 분야로 넓혀서 책을 쓰려고 합니다. 요즘 쓰고 있는 책은 과학의 전 분야를 다루는 내용이예요. 노벨 물리학상 받는 꿈은 포기했고 노벨 문학상에 도전해볼까 싶어요. 하하”
학교 강의와 수많은 초청 강연, 신문칼럼 연재, 책 집필, 그리고 미술관 다니기…, 지금은 할 일이 너무 많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바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그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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