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KRISStory

TOP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 작성자최고관리자
  • 작성일2019-07-25 14:03
  • 분류지식을 나누다
  • 조회수4598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속담 속에 측정 과학이?  

 

우리의 속담 속에는 삶의 지혜가 압축되어 녹아 있다. 때로는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의 교훈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익살스러운 해악 속에 담긴 지혜를 깨닫게 하기도 한다. 이번 호부터 연재될<속담 속 측정과 과학>에서는 측정이나 과학적 생각이 담긴 속담을 찾아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펼쳐 나가고자 한다.

 

우리 속담에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먼 길이라도 한 걸음씩 차분히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먼 길을 걸어서 가야만 했던 옛날에는 길을 떠날 때 대단한 각오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마음의 다짐이나 위로의 말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글: 박용기 KRISS 초빙연구원]

 

 

천 리 길은 얼마나 먼 거리일까?


그렇다면 천 리 길은 얼마나 먼 거리일까? 거리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여기에 등장하는 ‘리(里)’라는 거리의 단위에 대해 알아야 한다. 리는 우리가 요즈음 사용하고 있는 미터법 이전에 사용하던 척관법이라는 측정 단위에서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장에서는 쌀을 되나 말로 재어 팔았고, 고기나 과일 채소 등은 ‘근’이라는 단위로 팔았으며, 천을 파는 포목점에서는 천의 길이를 ‘자’라는 단위로 재어 팔았다. 즉 쌀 한 말, 쇠고기 한 근, 그리고 광목 한 자 등. 이러한 단위들이 척관법의 대표적인 부피, 무게 및 길이의 단위이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작은 시골에서 살았던 필자는 어른들이 이웃 마을 혹은 좀 떨어진 큰 도시까지의 거리를 말할 때 ‘오 리’, ‘십 리’ 등으로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리’라는 단위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사용하였던 거리의 단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리의 길이는 시대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조선시대에서는 주척(周尺)이라는 자로 재어 6 자를 1 보(步)로 하고 360 보를 1 리라 하였다. 조선 시대의 주척의 길이도 조금씩 다르지만 1 자는 약 20 cm이므로 오른발과 왼발을 한 번씩 걸은 길이인 1 보는 약 1.2m가 되며 1 리의 거리는 약 432 m가 된다.

고종황제 시대인 1902년의 ‘도량형규칙’이나 1905년의 ‘도량형법’에 의하면 1 리는 1,386 척(尺) 혹은 2,100 주척(周尺)이었으며 요즘 단위로 환산해 보면 420 m가 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식 도량형법에 따라 1 리가 3,927 m로 바뀌게 되었다. 즉 일제 강점기 이전의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던 1 리의 10 배에 가까운 거리가 됨으로써 혼란이 생기게 되었다. 즉 일제 강점기의 1 리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리 단위로는 10 리에 가까운 거리인 것이다. 해방 후에도 이러한 두 가지 다른 정의의 ‘리’가 쓰이고 있다.

 

물론 지금은 척관법이 비법정 단위이므로 길이나 거리의 단위는 법정 단위인 미터만을 써야하지만, 속담이나 오래된 글에서는 여전히 리라는 단위를 쓰는데, 대부분 1 리는 400 m로 계산하고 있다. 애국가의 가사에도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대목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삼천 리는 약 1,200km의 거리로 남쪽 해남의 땅끝마을에서부터 북쪽 함경도 온성까지를 말한다.

 

이탈리아의 아동 문학 작가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의 단편 <아펜니노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를 토대로 제작된 일본의 애니메이션인 <엄마 찾아 삼만 리>는 일본의 운제목이 ‘엄마 찾아 삼천리’였지만 우리 전통적인 리 단위로 환산하여 제목을 붙인 예이다. 하지만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1869년에 쓴 고전 과학소설인 <해저 2만 리>는 원래 제목에서 2만 리그로(약 8만 km), ‘해저 20만 리’로 번역하는 것이 우리의 거리감과 일치함에도 2만 리로 된 원인은 일본어판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거리의 단위의 차이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속담에 나오는 천 리 길은 대략 400 km정도이며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거리를 걸어간다면 몇 걸음이나 될까? 일반적인 성인의 평균 보폭을 75 cm라 하면 1천 리는 약 533,000 걸음이 되고, 한 시간에 대략 4 km를 간다고 하면 쉬지 않고 걷는다고 해도 대략 100시간이 걸린다. 이는 하루에 12 시간씩 걸어서도 꼬박 8일 하고도 반나절은 더 걸어야만 하는 먼 길이다. 옛날 부산에서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천리 길인 한양에 걸어서 가기 위해서는 대략 한 달 가량 미리 출발 했다고 한다. 지금보다 길도 험하고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가 그리 멀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서울에서 부산은 KTX기차를 타면 417 km를 2시간 20분 남짓이면 갈 수 있게 되었으니 걸어서 한양을 다녀와야 했던 옛 선조들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꿈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현재는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런데 이렇게 빠르고 최첨단의 고속 열차 레일의 폭은 지금으로부터 2천 년도 넘는 과거의 역사로부터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기찻길의 간격인 표준 궤간은 1,435 mm이다. 이 간격을 ‘스티븐슨 게이지(Stephenson gauge)’라고 부르는데, 이는 증기 기관차를 발명한 영국의 조시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그가 증기 기관차를 발명하여 영국에 세계 최초로 철도가 건설되면서 1846년 영국 의회는 기찻길을 통일을 위해 궤간법을 제정하면서 철로의 폭을 1,435 mm(4피트 8.5 인치)로 결정하였다. 왜 이런 묘한 숫자의 간격을 표준으로 정했을까?
 

 

최초의 철도 선로는 철도 이전의 말이 끄는 트램 선로를 건설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 그들은 트램 선로를 건설하면서 그들이 4륜 마차를 만들 때 사용하였던 지그와 공구들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그 마차의 바퀴 간격이 바로 4 피트 8.5 인치였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바퀴 간격을 이 크기로 제작하였을까? 그 이유는 그 당시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바퀴 자국이 깊이 패인 오래된 길을 가야만 하는데, 길에 깊이 패인 두 바퀴의 간격과 일치시키기 위해서였다. 만일 바퀴 간격이 이 바퀴 자국과 달라지면 마차가 달리는 중 바퀴가 쉽게 망가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누가 이러한 바퀴 자국이 난 길을 처음 만들어 마차를 다니게 했을까? 로마제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로마제국은 로마제국 최초의 도로인 ‘비아 아피아(Via Appia)’ 가도를 기원전 312년에 완성하고 그 이후 전투에 사용하는 마차인 전차들이 다니는 길을 계속 만들어 3세기 말에는 총 연장이 8만 5천 km에 달했다고 한다. 2017년도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총 연장 길이는 4,717 km, 도로 총 연장 길이는 11만 km 임을 감안하면 2천여년 전 로마제국의 엄청난 도로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로마제국이 각 도시의 점령 지역에 도로를 건설할 때  도로 폭의 기준은 바로 로마의 주력 부대가 사용하였던 두 말의 말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편하게 달릴 수 있는 두 마리 말 엉덩이 간격이 4피트 8.5 인치(1,435 mm)였던 것이다.  

 

참고로 로마제국 시대의 길이 단위로는 손가락 길이에 해당하는 디기투스(digitus, finer, 18.5 mm), 지금의 인치와 같은 웅키아(uncia, inch, 24.6 mm), 발의 크기인 페스(pes,(Roman)foot,296 mm), 그리고 마일에 해당하는 밀레 파수스(mile passus, (Roman)mile, 1.48 km)등이 사용되었다.  

 

철길 간격과 관련된 재미있는 도시전설도 있다. 「미국의 우주 왕 복선을 발사할 때 사용하는 고체 로켓 부스터라는 것이 있다.」고체 로켓 부스터는 미국의 우주왕복선의 메인 연료 탱크 옆에 두 대가 부착되어 이륙 시 71%의 추진력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고체 로켓 부스터는 유타에 있는 티오콜(Thiokol)이라는 회사에서 제작되는데 원래 설계 당시 NASA는 실제로 사용한 부스터보다 더 큰 것을 원했다. 그러나 제작된 부스터는 기차로 발사장까지 운반해야 하는데 그 사이에는 터널이 있어 그 터널을 통과할 수 있는 크기이어야만 했다. 터널의 폭은 기찻길 간격보다 약간 컸기 때문에 결국 부스터는 다이어트를 해서 원통 지름을 기찻길 간격과 동일한 4 피트 8.5 인치(1,435 mm)로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사용되는 부스터의 크기는 높이가 45.46 m, 지름이 3.71 m로 미국의 기찻길 간격인 1.435 m보다 훨씬 크다. 부품은 유타의 공장에서 만들어져 4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운반된다. 물론 철도 운송을 위해서는 중간의 터널이나 교량 등이 있어 적재할 수 있는 화물의 최대 크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 크기가 부스터 설계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우주 왕복선 고체 로켓 부스터에 관한 현대판 전설이 만들어 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강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걷는 길  


자동차나 기차 등 먼 길을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먼 길을 걷는 일이 참 힘들고 불편한 일이었겠지만, 요즈음 건강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먼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걷는 길이 만들어 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천 리 길도 넘는 길 걷기에 나서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세계 10대’ 유명 걷는 길(walking trail) 등이 소개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마 산티아고 순례길일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여러 루트가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코스의 하나로 알려진 프랑스의 생장피 애드포르(St Jeen Pied de Port)에서 출발하는 프랑스 루트(까미노 프란세스, Camino Franc?s)의 경우 총 길이가 무려 2천 리 길인 800 km이며, 완주하려면 한 달이 걸린다. 우리나라의 제주 올레길도 유명한 걷는 길의 하나로 해외에서도 소개되고 있다. ‘올레’라는 말은 제주도 방언으로 좁은 골목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21개의 코스가 개발되어 있으며 각 코스는 15 km정도로 이루어져있다. 한 코스를 걷는데 필요한 평균 소요 시간이 5~6시간이며 총 길이는 천 리 길이인 약 425 km이다. 먼 길을 걸을 때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건다보면 주변의 자연 경관이 주는 힐링 효과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주하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먼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정지해있는 물건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많은 힘이 필요하다. 일단 움직임이 시작되면 보다 작은 힘으로도 물체를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는 물체와 바닥 사이에 작용하는 정지마찰이 물체가 미끄러지거나 구를 때 나타나는 마찰력보다 크기 때문이다. 새롭고 어려운 일을 할 때 마음속에도 정지마찰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지만 일단 시작하면 많은 경우 해낼 수 있음을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은 이야기 해주고 있다. 최첨단 고속 열차도 오래 전 만들어진 마차로부터 시작된 것처럼 과학과 기술 발전의 정석도 역시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QUICK MENU

QUICK MENU 원하시는 서비스를 클릭하세요!

등록된 퀵메뉴가 없습니다.

등록된 배너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