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ISStory
TOP이야기로 음악을, 음악으로 소통을
- 작성자최고관리자
- 작성일2019-07-24 13:25
- 분류함께 걸어가다
- 조회수1519
이야기로 음악을, 음악으로 소통을
음악평론가 임진모
오랜만에 비가 내렸던 2월 어느 날, 카페에 먼저 도착해 임진모 음악평론가를 기다렸다. 조금은 소란한 사람들 목소리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선율, 비 그친 뒤의 가라앉은 분위기에 인생과 음악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에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시간 무렵 나타난 그는 외투를 의자에 걸치며 인사를 건넸다. 귀에 익은 편안한 목소리였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음악평론가인 그는 누구보다 음악에 대해 진지하고 치열하게 살아왔다. 따뜻했던 커피가 다 식을 때까지, 그와 오랜 대화를 나눴다. [글: 성혜경, 사진: 김하람]
꿈을 꾸고 꿈을 이룬 축복
그가 처음 음악평론가의 꿈을 가진 건 중학교 3학년 시절이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했던 소년에게 음악은 가장 친한 친구였다. “저는 제일 감사하게 생각하는 게, 어떻게 그 많은 것들 중에 음악을 사랑하게 됐을까 하는 점이예요. 그땐 음악평론이 직업이 될 거라는 생각, 대중적인 인지도 가져다주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죠. 그냥 동물적으로 끌렸어요.” 왜 하필 음악이었을까, 아직도 문득문득 신기하다는 임진모 평론가. 그는 어렸을 때부터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듣고, 남진, 나훈아의 화려한 무대를 보며 음악평론가의 꿈을 키웠다.
“예술가는 하늘이 내려주는 직업이잖아요. 노래나 연주, 작곡 같은 건 제가 넘볼 수 없는 영영이라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악을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해주는 일을 해보자 했던 겁니다.” ‘음악을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해주는 일,’ 시간이 지난 뒤 그것이 바로 음악평론가의 역할이란 걸 알게 됐다. 그는 1993년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라는 책을 출간하며 음악평론가의 길에 발을 내딛었다. 반응은 기대이상이었고, 같이 책을 내보자는 러브콜이 이어졌다.
임진모라는 이름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계기는 라디오 출연이었다. 첫 방송 데뷔는 당시 가수 김창완이 진행했던 1989년 CBS ‘밤과 음악 사이’출연이었고, MBC 라이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고정게스트를 맡으며 청취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배철수 선배와의 ’티격태격‘이 괜찮은 케미였다고 얘기하더군요. 배 선배는 본인이 저를 키웠다고 얘기해요. 저도 동의합니다.” 무려 22년 째 고정게스트를 하고 있으니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음악평론가 인생의 동반자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통의 전제조건
작년 3월부터 진행을 맡은 TBS ‘임진모의 마이웨이’는 그의 삶을 크게 바꿔놓을 만큼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 청취자들과 공동의 장을 만들어 나가는 즐거운 노력과 함께, 인지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저와 대중의 접점은 목소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직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가끔 얼굴을 내비쳐야 하죠. 드러내야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으니까요.” 음악평론가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할 매체가 필요하다. 매체를 선택할 권리는 자신에게 있지만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청자인 대중에게 잊히지 않아야 한다. “요즘은 ‘지난번 퀸에 대해 쓰신 글 감명 받았습니다.’ 뭐 이런 말 듣는 일이 거의 없어요. 다들 읽는 것보다 보는 것을 선호하니까요. 한때는 고정 칼럼이 14개나 될 만큼 글을 많이 썼는데 이젠 그런 때도 있었나 싶어요.” 신문이나 잡지 같은 종이매체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이제는 글로 먹고 살던 시절은 추억이 되어 버렸다.
퍽 아쉽지만 꾸준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음악을 하는 세대도 듣는 세대도 음악의 매체도 다 바뀐 지금까지 음악평론가로 슬럼프 없이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말처럼 ‘누적효과’덕분이었을 것이다.
임진모 평론가가 대중과 만나는 또 하나의 매체는 강연이다.
1995년부터 24년 간 대중강좌를 하면서 그는 ‘소통’에 대한 배움을 얻었다고 말한다. “의무적으로 수강하는 것이든 자발적으로 수강하는 것이든 주어진 공간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게 하자는 생각으로 강의를 준비해요. 어떻게 생각하면 강의를 듣다가 누가 졸든 휴대폰을 보든 신경 안 써도 되지만 저는 그 자리에 와있는 사람들이 경청하도록 만드는 게 강연의 핵심이라고 봐요.”
그의 강연에는 한 가지 룰이 있다. ‘끊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잠시라도 흐름을 멈춰서는 안 된다. 음악을 틀거나 동영상을 재생시키는 몇 초 때문에 흐름이 끊겨버린다는 걸 감지한 뒤로 그는 CD 플레이어 대신 자신의 목소리로 음악을 들려준다. “제가 노래를 무지막지하게 못 하거든요. 강연에서 직접 노래를 하려고 연습도 1년이나 했어요. 직접 부르니까 훨씬 좋더라고요. 저와 듣는 사람들 사이에 소통이 이루어지니까 강연이 더 잘 흘러갈 수밖에 없죠.”
청자와 직접 대면하는 강연뿐만 아니라 글을 쓰거나 방송을 하는 것도 결국은 모두 ‘소통’이다. 소통의 기본은 상대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이해에 앞서 진심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다. “제 자신이 최선을 다 할 때 대중들도 공감하는 것 같아요. 우쭐하거나 가르치려 하면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려요. 그러면 듣는 분들도 고개를 끄덕여 주시더라고요. 제일 기분 좋은 칭찬이 ‘임진모가 말하면 이해가 잘 된다’라는 말이에요.” 대중들이 알아듣는 언어로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이 그가 지키는 소통의 기본이다.
문화와 과학의 건강한 성장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과제, 소통의 출발은 대중을 이해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신곡들을 다 알아야 하고 반복해서 들어봐야해요. 저도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취향이 있는데 싫어하는 노래도 들어야 하죠. 하지만 좋아하지 않더라도 유행하는 음악을 듣는 노력이 필요해요. 저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들 모두 말이죠. 문화의 핵심은 ‘지금’,‘여기’에 있기 때문이에요. 소통은 지금 우리 음악계에서 창작되고 불리는 노래를 알고 향유할 때 이루어집니다.”
임진모 평론가는 과학의 소통은 조금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은 전문가에 의해 미지의 영역을 끝없이 파고드는 것이며, 그런 특성 때문에 ‘공감’과 ‘확산’의 성향을 가진 대중문화와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과학적 커뮤니케이션은 교육적 차원이 더 강하죠. 그 분야에 흥미를 느끼는 새로운 집단, 과학에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의 소통이 중점이 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과학정보, 과학지식을 정확하면서도 편안하게 풀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접점 하는 또 다른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LP시대에서 음원시대로의 급격한 전환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그는 과학기술과 예술이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공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IT시대는 반성적 대중, 진지한 대중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연락수단을 넘어 금융거래부터 음악 감상을 포함한 여가활동까지 스마트 폰 속에서 하는 사람들. 스마트 폰이 넓은 세상을 열어줬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문화의 다양성을 제한하고 있다. “‘애써 찾는’소비자들이 있어야 해요.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적극적 수요자가 더 많아져야 해요. 지금은 주류와 비주류의 비율이 너무 극적이에요. 또 다른 문제는 극소수의 비주류가 문화적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잘난 체 세력’에 머문다는 거예요. 대중이, 소비자가 대세에 휩쓸려 가는 게 아니라 좋은 작품, 좋은 음악을 스스로 찾으려 해야 합니다.”
한국 대중음악의 한복판에서 소통에 대해 고민하고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온 임진모 평론가, 그는 끝으로
QUICK MENU 원하시는 서비스를 클릭하세요!
등록된 퀵메뉴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