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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공기 맑고 하늘 투명한 그곳, 영동
- 작성자최고관리자
- 작성일2019-07-24 09:30
- 분류함께 걸어가다
- 조회수1447
공기 맑고 하늘 투명한 그곳, 영동
경부선 영동역 플랫폼에 발을 내려놓는다. 비스듬히 내리쬐는 햇빛에 찡긋 눈을 감았다 뜨니 파란 하늘이 보인다. 그 파란색은 명도가 높은, 맑고 환한 파란색이다. 탁하기만 한 공기에 반가운 봄기운도 마음 놓고 누리지 못했는데, 영동에 와서야 숨이 조금 트이는 기분이다. 청정지역 영동 여행은 그 하나만으로도 족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글: 성혜경, 사진: 김하람]
깊고 그윽한 색과 향과 맛
2 ? 02번 농어촌버스를 타고 영동와인터널로 향했다. 도로 양 옆으로 펼쳐진 산과 들은 완연한 봄이었다. 살짝 열어 놓은 차장 안으로 풀잎 내음이 살며시 들어왔다. 괜히 감상에 젖어 20분쯤 달렸을까. 곧 군민운동장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에 번쩍 정신을 차리고 하차 벨을 눌렀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들고 ? 길에 내려섰다. 반갑게도 도로 건너편에 영동와인터널 입구가 보였다.
영동은 전국 최대면적을 자랑하는 포도 주산지로 전국 생산량의 12.8%를 차지하고 있다. 소백산맥 추풍력 자락에 위치한 영동군은 밤낮의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풍부한 지리적 특성으로 과일의 당도가 높고 특유의 맛과 향이 살아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자란 포도가 맛있는 이유도 바로 타고난 지리적 조건 덕분이다.
3,000원의 착한 입장료를 내고 와인오크통이 쪼르르 서있는 와인터널 입구에 들어섰다. 길이 420 m의 터널을 따라 용동의 와인을 소재로 한 다양한 전시들이 꾸며져 있다. 천장에 포도(모조품)가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밭여행’길을 지나 와인문화관에 다다랐다. 고대 이집트 같은 분위기의 전시관 입구를 통과하면 술잔을 들고 있는 술의 여신 조각상이 관광객들을 맞는다. 와인의 정의와 유래는 물론 고대, 중세,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와인의 역사를 길을 따라 걸으며 살펴보니 왠지 시간의 통로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와인문화관을 빠져나오니 휘황찬란한 통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영동와인터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진 촬영 장소다. 무지갯빛 조명과 영동의 행사들을 담은 사진들로 꾸며진 원형 통로에 이어진 영동와인관은 영동와인의 장인정신과 영동의 자연환경에 대해 설명해 준다. 오크통 모양을 한 액자에는 각종 와인 사진과 함께 해당 와인의 특징과 와이너리 소개가 설명되어 있다. 와인레스토랑, 와인저장고, 와인체험관까지 420 m의 터널을 통과하고 나니, 자연과 시간이 숙성시킨 영동 와인의 깊은 맛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유혹을 뿌리치고 다음 여행 스팟을 향해 발길을 서둘렀다.
평화를 기리는 총탄자국
황간면으로 이어진 4번 국도 옆, 노근리 쌍굴다리에 도착했다. 무근 콘크리트로 지은 아치형 다리의 모습에 왠지 모를 위협감이 느껴졌다. “이곳은 노근리 사건 현장입니다(This is NOGUENRI incident Point)”라고 쓰인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은 이 쌍굴다리 밑에 피신해있던 민간인들에게 기관총을 난사해 250여 명을 학살했다. 2001년 1월 12일 ‘노근리 사건 한·미 조사단’은 공동발표를 통해 이 사건이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이라는 사건의 실체를 인정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이날 성명을 통해 유감을 표명했다. 이후 노근리는 ‘평화와 인권’의 성지가 됐다.
노근리 사건이 지닌 역사적, 인권사적 의미를 소개하고 있는 평화기념관에는 사건의 개요와 함께 1960년대에 시작된 노근리 사건의 진상 규명 요구부터 1999년 9월 AP통신 보도로 노근리 사건이 알려지게 된 경위, 이후 진상조사와 2001년 당시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유감 표명, 2004년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까지 50년의 길고 길었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노근리 사건으로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 노근리 사건 당시 공중 폭격을 했던 비행기와 동일 기종인
F-86F 전투기와 군용트럭, 지프가 전시되어 있는 야외전시장도 둘러보았다.
2003년에는 노근리 쌍굴다리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고, 2004년에는 ‘노근리 사건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한다. 2010년에는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작은 연못>이 개봉되기도 했다.
역사는 과거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다. 상처 위에 새살이 돋듯, 노근리에 남겨진 전쟁의 상흔이 평화라는 가치로 회복되길, 쌍굴다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총탄자국을 매만지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죽음을 맞은 희생자들의 처절한 비명은 흩어진지 오래··· 지금은 기차만이 무심히 철교 위를 지난다.
고개 너머의 낡은 기차역
다음 여행지로 가기 위해 영동군 서쪽 추풍령면으로 향했다. 추풍령은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던 선비들이 과거시험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질까 두려워 피해갔다는 그 고개다. 추풍령 고개를 넘기 전, 추풍령역이 있다. 이 역은 1905년에 개통된 경부선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2003년 개축한 이후 고풍스러운 멋은 사라졌지만, 역사 건너편에 옛 경부선의 흔적인 급수탑이 남아 있어 아쉬움을 덜어주었다. 이 급수탑은 경부선을 운행하던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1939년 설치된 급수탑인데, 경기도 연천역, 강원도 도계역, 원주역 등 국내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철도 급수탑 중에서 유일하게 평면이 사각형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기계실과 물통이 설치된 급수탑, 물을 공급하던 연못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고, 기계실 내부에는 당시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했던 펌프도 보존되어 있었다.
달도 머물다 가는 풍경
4번 국도는 노근리 쌍굴다리를 경유해 황간면에 닿는다. 황간면 곳곳에는 월류봉,화언악,용연동,산양벽,청학굴,법존암,사군봉,냉천정까지 아름다운 물길을 따라 비경들이 자리하고 있다. 백화산 자락에서 발원한 석천과 민주지산 물한계곡을 이루는 초강천이 만나는 지점, 한천팔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월류봉을 찾았다.
깎아지른 암봉이 도열해 있고, 굽어 흐르는 초강천으로 내리꽂힌 산봉우리 위에는 월류정이 고요히 앉아 있다. 그 경치를 보니 과연 달이 머물다 갈 정도로 아름다운 정자라는 표현이 제격이었다. 유려한 물줄기와 수려한 산세에 시조가 절로 나올 것 같았다.
월류봉 인근에는 우암 송시열 선생의 유허비와 한천정사가 남아 있다. 한천정사는 우암 선생이 은거하면서 학문을 닦고 후학을 길렀던 유서 깊은 곳이다. 이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송시열 유허비도 그 곁에 있다. 월류봉을 비롯한 한천팔경도 한천정사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매일같이 이 비경과 벗하여 조용히 글을 읽었을 우암 선생이 부러웠다. 나도 잠시 시끄러운 세상을 잊고 우두커니 선 암봉을, 한 없이 흐르는 물길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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