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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 가장 춥고 더운 곳에서 달리는 남자

  • 작성자최고관리자
  • 작성일2019-01-22 10:06
  • 분류지식을 나누다
  • 조회수1055

그는 달린다. 건강한 두 다리만 있으면 가능하기에. 그는 2001년부터 자신의 몸과 정신을 시험이라도 하듯, 끊임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지구에서 가장 춥고 더운 곳, 남극과 북극의 극지방과 사막만을 골라 달리는 그는 오지를 뛰는 경험을 통해 대자연의 위대함과 일상의 소중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글. 황정은 사진. 김병구  

 

사진 : 유지성 오지 레이서

 

그가 오지에서 달리는 이유


학교를 졸업한 후, 많은 경우가 그렇듯 유지 성 씨 역시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다. 건축을 전공했기에 건축회사에 들어가 다양한 디자 인을 만들어 냈지만 왜인지 그것만으로 그는 일과 삶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 때 눈에 들 어오기 시작한 것이 오지를 달리는 ‘오지 레이스’였다.  

 

“10년 동안 건축 설계 일을 했어요. 제가 다녔 던 회사가 비교적 수준도 높고 실력을 인정받 는 곳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시장 에서 경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실 감한 순간이 있었어요. 영미권 건축설계자들의 결과물을 보는데 저희와 기본이 다르다는 생 각이 드는 거예요. 그들은 어릴 때부터 많은 좋 은 것을 보며 자랐죠. 건축의 토양이 우리와 다 르기에 만들어내는 것도 달라요. 그런 것들을 매 번 보면서 ‘지금 내가 승산 없는 게임을 하고 있구나’ 싶어 다른 일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그 때 트레일러닝(시골길, 산길을 뜻하는 트레일 (trail)을 달린다(running)는 의미의 합성어) 을 알게 된 거예요. 리비아에서 일 할 때 위성 방송에서 사막을 뛰는 사람들을 봤죠. 그 때 막 연하게 생각했어요. 나도 한 번 뛰어볼까.” 

 

TV에서 사막을 뛰는 사람을 보고 막연하게 품은 레이스에 대한 마음. 그 마음 하나만을 갖고 그는 1년 8개월을 준비해 2002년 첫 사막 레이스에 참가했다. 당시 90 kg에 육박한 체중이었지만 대회를 준비하며 16 kg 을 감량했다. 


“완주해보니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 같았어요. 해외에서는 20년 전부터 이미 이러한 대회가 많이 알려지고 하나의 시장으로 자리 잡은 상 태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불모지였죠. 당시 대회 참가자 중 아시안은 저밖에 없었을 정도니까요. 대회에 참가하며 느낀 게 딱 하나 있었어요. 이거라면, 내가 세계의 누구와도 어 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요.”  

     

유지성 씨는 자신을 일컬어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 이라고 이야기했다. 운동을 싫어하기에 달리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적 당히, 게으르게 완주할 방법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달리기는 그것에 가 장 부합한다고 여겼고요. 트레일러닝은 누구 나 할 수 있어요. 문턱이 낮죠. 저는 남들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그 개념을 깨고 싶었어요. 쉽게,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사진 : 사막에서 트레이닝중인 유지성 오지 레이서

  

인생과 닮아 있는 트레일러닝


2002년 사하라 사막 레이스에 참가하며 본격 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그는 첫 레이스 이후 고 비 사막, 아타카마 사막, 나미비아 사막, 남극 과 북극 등 지구상에서 가장 덥고 추운 곳을 골라 꾸준히 대회에 참가했다. 사막을 달릴 때 는 고요함에 젖고, 극지방을 달릴 때는 하얀 풍경에 젖게 된다는 그는 “하지만 결국 달리 는 것은 현실”이라며 웃음을 내보였다.  

 

“처음 사하라 사막을 달릴 때 여러모로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사하라가 워낙 넓기도 하거니 와, 다른 사막과 비교해도 그곳만의 아우라가 있어요. 고요함 속에 아무것도 없는 모래, 그 야말로 황무지인 그곳에서 미묘한 기분으로 계속 달리는 거죠. 북극에서는 오로라를 보며 달렸어요. 영하 40도의 날씨를 두 발로 가로 지르며 세 가지 색의 오로라를 모두 볼 수 있었죠.” 


사막과 극지방을 달리는 그에게 사람들이 가 장 많이 묻는 질문은 ‘힘들지 않냐’는 것이었 다. 이에 대해 그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한다. ‘전혀 힘들지 않다’고. 유지성 씨는 “사막과 극지방의 경우 온도가 매우 높고 낮긴 하지 만 모두 습도가 낮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나 라에서 뛰는 것보다 더 쾌적할 때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남극은 여름에 가서 뛰기 때문에 오히려 따 뜻하고요, 북극은 정말 춥긴 하더라고요. 헌 데 극지방이 건조해요. 습기 때문에 한국의 겨 울이 더 춥게 느껴질 정도에요. 사하라 사막 은 58도까지 올라가는데 뜨거운 기운은 있지 만 한국에서 느끼는 정도의 불쾌한 더위는 아니에요. 건조하니까요. 여러 곳을 달리며 느낀 건, 온도보다 중요한 건 습도라는 거예요. 한국처럼 습한 더위에서는 땀이 잘 안 마르죠. 습한 추위에서는 모든 게 다 얼어버려요. 하지만 사막이나 극지방은 일단 땀이 배출되면 날아가니까 오히려 괜찮아요.” 

     

그는 오지를 달릴 때 가장 중요한 자세는 ‘마음가짐’이라고 이야기했다. 어떤 마음가짐을 갖 고 오느냐에 따라 굉장히 힘들 수도, 혹은 그 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몸은 분명 한계가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것은 정신이 라는 의미였다. 

   
“물론 돌발상황도 있죠. 저 역시 오지를 달릴 때는 언제 잘못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임해 요. 워낙 열악한 환경인 데다가 장거리잖아요.  실제로 제 동료가 아찔한 순간에 처한 적이 있었어요. 나미비아 대회에 참가할 때였는데, 그 곳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깊은 계곡이 있어요. 거기서 일본 참가자 중 한 명이 실종된 거예 요. 다행히 다음날 구조되긴 했는데, 밤사이에 온갖 알 수 없는 동물들이 자신을 둘러싸서 한 숨도 잘 수 없었다더라고요. 트레일러닝 중에 는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잘못 들어서는 경우가 많아요. 길을 잃지 않으려면 보이는 것만 믿고 가면 안 되죠. 자신의 직관도 함께 믿어야 해 요. 오지 레이스는 그게 좋아요. 내 모든 감각을 믿고 의지하게 된다는 점이요.” 

   
앞으로 서울의 둘레길을 몽블랑 둘레길 못지 않은 레이스 코스로 만들고 싶다는 그는 서울 이라는 도심 속에서, 논스톱으로 달릴 수 있는 길을 닦아 전 세계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국 제적 축제를 기획하고 싶다고 했다. 그 안에서 진짜 문화를 만들고 만끽하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었다  

 

사진 : 눈 쌓인 오지에서 트레이닝중인 유지성 오지 레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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