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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향기 가득한 강진, 그 풍경에 빠져들다

  • 작성자최고관리자
  • 작성일2018-08-07 15:08
  • 분류함께 걸어가다
  • 조회수1452

철쭉 향기가 5월 빛에 찬란히 부서진다.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그 하나하나의 향기가 봄의 저편으로 흩어지는 상상을 한다. 흩어진 향기가 사람들에게 가닿으면 하나의 기억들이 만들어진다. 나에게 철쭉 향기가 가진 기억 분자는 봄이면 찾았던 전남 강진을 떠올리게 한다. 남미륵사를 시작으로 펼쳐지던 그 봄꽃 향과 가우도의 후박나무 내음. 그런 날들을 묵묵히 떠올리면 이미 마음부터 그 곳으로 성큼 다가가 있다.
글. 전민제 사진. 김병구  

사진 : 산과 바위 사이의 나무다리 산책로

사의재가 품은 네 가지의 진리
아침 일찍 차를 몰아 전남 강진으로 향했다. 고속도로 양 옆으로 펼쳐진 산과 들은 이미 완연한 봄이었다. 꽃, 나무 그리고 풀잎 향기가 살짝 열어 놓은 차창 안으로 살며시 들어왔다.  

사진 : 남미륵사 전경  

첫 목적지는 사의재(四宜齋). 사의재는 다산 정약용이 1801년 강진에 유배 와서 처음 기거했던 곳이다. 유배 온 다산이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자 그가 기거하던 주막(동문매반가) 주인 할머니가 “어찌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라며 방 하나를 내어주었다는 이야기는 사의재의 유명한 탄생 비화다.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 이라는 뜻의 사의재에서 다산이 강조한 네 가지 덕목은 생각, 용모, 언어, 행동이었다. ‘생각은 맑게, 용모는 단정히, 말은 적게, 행동은 무겁게’라는 다산의 가르침에서 그의 곧은 성품이 느껴진다. 마을 입구의 큰 나무를 지나 사의재 마당에 들어선다. 나무로 세운 기둥, 황토로 바른 벽, 볏짚으로 쌓아 올린 지붕을 보며 시간의 깊이를 가늠해본다. 방 안은 다산이 머물던 곳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벽에 걸린 도포 한 벌과 갓, 이불 두 채, 문갑, 낮은 서탁, 그 위에 책 몇 권과 촛대 하나가 전부인 방은 조촐하고 소박하다. 깊은 밤, 불을 밝히고 책장을 넘기는 다산의 모습을 떠올리니 그 밤의 적막과 스산함이 밀려온다. 사의재 옆 연못에는 노랑꽃창포가 한창이다. 노랑꽃창포는 붓꽃과의 식물로 일반 창포와는 달리 선명한 노란 꽃이 인상적이다. 잎의 모양은 창포와 닮았지만 문질러도 창포 향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향기 없는 노랑꽃창포. 마치 쓰임새는 많았지만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던 다산의 생애를 노랑꽃창포가 대신 전하는 것만 같다.  

사진 : 가우도

오감만족 오감통
두 번째로 향한 강진 오감통은 사의재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오감통은 오감을 만족시킨다는 의미로 전남음악창작소를 중심으로 먹거리장터, 한정식체험관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문화 공간이다. 오감통의 중심인 전남음악창작소는 2016년 지역기반형 음악창작소 조성사업에 선정되어 마련되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 공연과 함께 음악 아카데미, 음반 제작지원, 뮤지션 발굴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곳이다. 라디오강진은 전남 음악창작소가 운영하는 방송국으로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유튜브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방송이 진행되는 토요일 오후에는 라디오강진 부스 앞에 마련된 청취석에서 실제 현장을 지켜 볼 수도 있다.  

 

사진 : 사의재


강진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먹거리다. 오감통 먹거리 장터는 관광객들에게 풍미여행의 즐거움을 선물한다. 한정식, 돼지불고기, 토하 비빔밥, 회춘탕, 대통령 밥상, 황칠오리, 보리밥 등의 강진 진미를 한 자리에서 맛 볼 수 있다. 마침 점심때가 되어 먹거리 장터의 한 식당을 찾았다. 고기, 생선, 젓갈, 나물, 생선회까지...자연의 모든 식재료가 한 상 가득 정갈하게 담겨 나왔다. 밥 한 숟가락을 떠서 나물과 함께 입에 넣으니 진한 흙 내음이 입 안 가득 퍼진다. 남미륵사에서 철쭉 향을 기억하다 남미륵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남미륵사는 강진군 군동면 풍동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네비게이션 덕분에 지도를 볼 일이 없어졌지만 지도 를 살펴보면 남미륵사는 강진과 장흥의 중간쯤에 있다. 1980년 창건된 이 절은 커다란 불상과 기이한 조형물들로 인해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뿜어낸다. 남미륵사는 철쭉으로도 유명하다. 절을 온통 철쭉꽃이 둘러싸 있을 정도로 경내에 온통 철쭉 향이 만연하다. 아쉽게도 5월 중순에 찾은 남미륵사에 철쭉은 이미 지고 없다. 철쭉이 4월 20일 경에서 4월말까지 한창인 까닭이다. 절 입구에 코끼리상을 지나 일주문을 향해 걷는다. 일주문에서 경내로 들어가는 길에 철쭉 나무의 수를 헤아리다가 너무 많아 그만둔다. 붉은색, 흰색, 연분홍색, 진분홍색 등 거대한 색과 향을 자랑했을 철쭉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사진 : 먹거리장터 음식점의 상차림  

 

일주문으로 향하는 길목에 뒤늦은 손님을 위한 배려인지 붉은 철쭉이 간간히 모습을 드러낸다.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 마당으로 들어선다. 대웅전 앞 3층 석탑과 13층 석탑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석가모니 부처상과 좌우에 보살 석상까지. 사실 남미륵사엔 불상, 석상, 조각상들이 다른 절에 비해 유별나게 많다. 크기는 천차만별이지만 대부분 거대한 덩치를 자랑한다. 이국적인 풍경과 비현실적인 느낌은 어쩌면 이런 인위적인 은유에서 오는지도 모르겠다. 관음전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마을 안에 자리 잡은 절이라 절 곳곳에 마을의 흔적이 묻어 있다. 몇몇 민가를 지나니 웅장한 규모의 33층 석탑과 관음전이 나타난다. 거대한 관음전엔 원통나무주목으로 조각된 관세음보살상이 있고 그 옆으로 실로 거대한 아미타 황동 좌불상이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높이 36 m, 둘레 32 m로 동양에서 가장 큰 좌불상이라고 하니 그 압도적인 크기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중국에서 각 부분을 제작하여 분해된 상태로 한국에 들여와 현장에서 제작했다고 하니 그 여정 역시 나름의 고행이었으리라.  

  사진 : 지역음악인 동상

가우도에서 만나는 봄의 향기
마지막 여정만 남았다. 강진만 8개의 섬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 가우도(駕牛島)다. 섬의 생김새가 소(牛)의 머리에 해당된다하여 가우도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생태탐방로 ‘함께해(海)길’로 들어선다. 바다와 산을 함께 조망할 수 있어 트래킹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다. 2.5 km로 조성되어 있어 여유 있게 걸으면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날은 흐렸지만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이미 탐방로를 삼삼오오 걸으며 봄을 만끽하고 있다. 섬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후박나무 군락지를 만날 수 있다. 후박나무는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고 바닷바람을 잘 견뎌 과거 가우도 전체에 자생하였으나 지금은 어린나무만 자라고 있고 남아 있는 군락지는 이 곳 뿐이라고 한다. 길고 구불구불한 후박나무 몸통을 따라 하늘을 향해 눈을 돌리니 잎 사이로 자잘한 봄의 빛들이 부서져 내 몸을 적신다. 나무 내음과 섬의 시간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분자처럼 내 곁을 떠 다니고 있는 것만 같다. 핫플레이스가 된 25 m 높이의 청자타워에선 스릴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청자타워에서 대구면 저두 해안까지 이어진 하늘길을 통해 973 m를 하강하는 짚트랙. 이쪽에서 저쪽까지 하강하는 데 1분 정도 걸린다. 이 광경을 멀리서 보면 해질녘 하늘을 배경으로 세밀한 붓으로 몇 개의 선이 그려져 있고 그 선으로 몇 개의 점들이 새처럼 미끄러져 내려오는 모습처럼 보일 것이다. 그 은근한 속도에 몸을 맡기고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코로 불어오는 바람 내음이 참 은은 하다고. 강진에서 만난 올해 봄의 향기가 참으로 근사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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